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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도 반기지 않는 직장 내 비민주주의”『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우석훈

  •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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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갑질. 구글 검색 창에서 이 네 글자를 입력하면 연관된 기업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대한항공, 종근당, bbq 처럼 누구나 아는 기업의 이름에서부터 회장의 실명이 직접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회장님의 갑질은 한국 사회의 씁쓸한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직장 갑질이 ‘회장’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회장 보다 힘든 게 내 상사의 갑질이다. 이런 갑질에 대해 따끔하게 꾸짖는 책이 나왔다.
12년 전, 취업난과 더불어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20대를 묶어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가 이번엔 ‘직장 민주주의’를 들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가 깃든 대한민국이지만, 유일하게 직장은 예외라고 주장하는 그는 이번 책을 통해 개인의 변화는 물론이고 사회 제도의 변화까지 외치고 있다. 내친김에 ‘88만원 세대’가 그랬듯이 ‘직장 민주주의’가 사회적 열풍으로, 그리고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는 경제학자 우석훈. 그에게서 이번 신간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직장 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국내에서는 용어 자체가 낯설 수 있는데요. 영어로 workplace democracy, 그러니까 일터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어요. 경제 민주화의 하위 범주로 다뤄지기도 하는데요. 듣고나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도 한데, 국내에서는 처음 쓰이는 용어에요.
저도 조사하면서 놀랐던 게 직장 내 민주주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도서가 없더라고요. 주변에 노동경제학을 전공하는 분들도 많고 노조 전문가 분들도 많은데 정말 의외였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소개하고 퍼뜨려야겠다 싶었어요.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쓰이는 ‘직장 갑질’이란 말과 비슷한 것도 같네요.
비슷하게 느껴지긴 해요. 직장 갑질이란 말이 직관적으로 더 와닿으니까요. 게다가 직장 갑질이란 단어가 주는 통쾌함도 있고요. 하지만 직장 갑질은 그 문제를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실 이건 개인의 문제라기보단 시스템, 나아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거든요. 거기에 초점을 두고자 ‘직장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선택했습니다.

‘직장 민주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직장과 관련된 지표들은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게 사실이에요. 그 자료들을 보고 있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국민소득이 만 달러도 되지 않을 때야 그럴 수 있다 싶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경제 규모는 평균 이상으로 몸집을 불렸는데, 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곳곳이 썩어 있는 거죠.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문제는 단기간에 생겼다기 보단, 오랜기간에 걸쳐 자리잡게 되니까요. 이건 분명 역사적으로 잘못된 지점이 있을 거란 생각으로 기업이란 조직과 그 안에서의 민주주의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는 제법 성숙해진 것도 같은데요. 그 대상이 ‘기업’에 국한되면 비민주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군대식 병영 문화의 잔재 때문이라고 봐요.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군대식 문화가 한국에 뿌리내려 일본보다 더 한 병영 사회가 된 게 아닌가. 그리고 그 문화가 직장을 비민주적인 집단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어요. 90년대 후반에 한 여성 과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 분이 대뜸 본인이 골프를 치면 장타를 친다고 자랑하시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데, 그야말로 직장이 군대식 문화구나 싶었어요. 남자보다 골프를 잘 치는 게 성공의 비결이라는 뉘앙스였거든요. 게다가 골프를 잘 친다는 게 ‘자세’나 ‘정교함’이 아닌 ‘비거리’를 기준으로 두고 있으니까요. 남성적인 힘, 군대식 조직문화가 기업 내 여성의 사고에도 깃들어 있었던 거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직장 내 비민주적 관습들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 세대는 그런 부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같은데요.
네 맞아요. 그래서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단, 우리 사회가 완벽하진 않더라도 꽤 성숙한 민주주의를 갖추고 있잖아요. 자연스럽게 시민 의식도 올라갔고요. 그래서 다른 부분의 민주주의까지 같이 챙기려하지 않아도  기업 내에서만 변화가 일어나면 되는 거예요. 기업에 관련된 제도만 정비하면 생각보다 빨리 바뀔수 있는 거거든요.
이미 개개인의 인식은 변화를 하고 있어요. 저는 20대가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이게 부모 자식의 관계가 재정립되면서부터라고 봐요. 아빠와 자식간의 관계가 친구같은 관계로 바뀌고 있잖아요. 과거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거죠. 이렇게 가족 관계가 변화하면서 기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준을 갖게 되는 거예요. 우리 세대만 해도 그걸 몰랐거든요.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40-50대는 직장에서 이상한 얘기를 듣고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삼켜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는 확실히 선진국 청년이라고 할 정도로 ‘이건 좀 아니다’ 고 반응 해요. 실제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이 생기는 조직도 있는데, 일단 그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의 변화 말고도 ‘제도’나 ‘문화’도 개선되고 있나요?
저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교육을 받으면 확실히 바뀌는 걸 볼 수 있거든요. 조직 내 구성원들의 마음이 순식간에 바뀌는 건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조심을 하는 거죠. 그게 변화의 시작이거든요. 예를 들면 성희롱 교육을 받았을 때 직원들의 젠더 의식이 곧장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최소 조심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이유가 개인의 윤리 문제가 아닌 기업의 이익과 연결된다는 걸 깨닫는 거죠. 기업의 오너나 일부 임직원들이 어떠한 나쁜 행동을 했을 때, 나의 평판에 금이 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우리 회사의 주가, 매출, 이익에 타격이 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를 들어 한 기업 임원이 컵을 던진다고 가정해봐요. 그보다 위에 있는 관리자의 입장에선 이 이야기가 회사 밖으로 퍼져나갔을 때의 파급을 생각하게 돼요. 그럼 과연 “우리 딸 잘했다” 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니죠. 그 장면을 목격 했다면 “안돼. 던지면 큰일나” 하고 말렸을 거예요. 회사가 휘청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자본 입장에서도 ‘직장 내 비민주적 행위’는 손해가 되는 부정적 요소예요. 자본조차 반기지 않는 현상인 거죠.

‘민주주의’라고 하면 자연스레 ‘자본 vs 노동’ 이란 프레임이 형성되는데요. 그렇다면 직장 내 민주주의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아닌 두 집단 모두에게 필요한 현상이란 거죠?
맞아요. 이건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도 환영할 주제예요. 예를 들어 AI의 발달로 조직 내 불필요한 인력이 늘어났다고 하면, 이는 자본가의 입장과 노동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어요.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직장 내에서 대표가 컵을 던지고, 오너의 가족이 직원들에게 막말을 하고, 조직장이 이성 직원을 희롱하는 것들은 누구의 입장에서도 반기지 않을 일인 거죠. 컵을 던지는 행위나 막말을 하는 행위, 부하 직원을 성희롱 하는 것들이 조직 발전에 기여가 될까요? 이러한 것들은 대외적으로 회사가 받는 이미지 타격은 물론이고 회사 내에서 직원들의 불만이나 이직, 퇴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따라서 직장 민주주의는 자본의 법칙에서 바라봐도 수긍하게되는 조건입니다. 직장 내에서 비민주적 행위가 많이 일어나는 곳은 단순히 ‘조직’이 실패한거지, 자본과 노동의 갈등이 아니예요.

방금 말씀하신 사례들처럼, 흔히 직장 내의 비민주적 행위를 떠올리면 오너 리스크라고 하는 최고위 임원들의 행태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하지만 실제로는 직원들 사이의 문제도 많은 편이잖아요.
그렇죠. 대부분 직장을 그만 둘 때, 팀장이나 상사 때문에 그만두지 대표 때문에 그만두는 건 드물어요.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대표와 어떤 갈등이 있겠어요. (웃음) 오히려 같은 범주에 묶이는 비슷한 연차의 상하 관계에서 이런 갈등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더더욱 한 개인(대표나 임원)의 변화를 요구할 때가 아니라 회사 문화 전체에 대해 접근하고 그 해결책을 구조화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례를 조사하면서 기억에 남는 주제가 있나요?
사실 직장 내 민주주의를 다루기 전에, 젠더 얘기를 하려고 준비 중이었어요. 미국에선 매년 Equal Pay Day 라고 불리는 동일 임금의 날 행사가 열리는데요. 이 날은 한 해를 기준으로 남자가 1월 1일 부터 12월 31일까지 받을 돈을 여성들의 경우 얼마만큼 더 초과해서 근무해야 동일 임금을 받을 수 있는지를 외치는 날이에요. 그게 2017년엔 4월 4일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2017년 미국에선, 여성 노동자가 1년 하고도 4달은 더 일을 해야 남성 노동자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과 동일한 임금을 받는 다는 거예요.
이 얘기를 왜 꺼내느냐 하면, 2017년 미국 동일 임금의 날에 트럼프의 딸 이방카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Equal Pay Day를 지지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에요. 즉, 좌우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이방카는 우리나라로 치면 보수 중에서도 극단적인 보수층인데, Equal Pay Day에서 목소리를 높였잖아요. 이걸 우리나라에 적용해보니 (명확한 기준을 적용한 건 아니지만) 대략 7월 정도가 되더라고요. 아마 미국도 처음엔 비슷했을 텐데 많이 단축시켜서 봄까지 간 거죠. 우리도 이렇게 ‘직장 민주주의’ 여러 주제 중 하나에 대해 조금씩 쟁취해나가면 언젠가 다니기 좋은 직장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남성 노동자의 반발은 없을까요?
현재의 제도는 많은 남성 노동자에게까지 피해가 갑니다. 소수의 엘리트 외에 모두가 손해를 보는 제도예요. 그래서 여성의 지위를 높인다고 해서 남성이 손해를 보는 게 아니에요. 우리 주위에는 사교성 없는 남자, 골프 안 치는 남자, 술 못마시는 남자도 많아요. 이런 집단의 경우 여성 만큼은 아니지만 그 못지 않게 차별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보완했을 때 혜택을 보는 사람은 일반 직원 모두가 되는 거예요. 남녀 구분 없이 함께 평등을 주장해야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책 속의 사례 중에 룸싸롱 비지니스가 없어지면서 일 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일 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사회가 달라졌다는 얘기가 인상 깊었는데요.
영화 산업을 조사하면서 제가 썼던 얘기인데요. 참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이 등장하면서 영화계에 많은 변화가 일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이러한 감독들이 우연히 룸싸롱을 안 가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예요. 사실 이전까지 영화 계약은 대부분 룸싸롱에서 이뤄졌거든요. 그런데 동시대에 마침 같은 성향(접대를 싫어하는 성향)의 감독들이 등장하고 게다가 내놓는 결과물들도 우수하다 보니 그 위주로 영화판이 개편이 됐어요. 술 대신 우유 마시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감독에게 룸싸롱은 무의미해진 거죠. 그렇게 10년 이상을 오다보니까, 영화 투자 산업에서 중요한 요직을 맡고 있는 직원들이 다 여성으로 바뀌었어요. 룸싸롱 접대가 아니라, 성실하고 상황을 잘 분석하고 또 추진하는 능력있는 실무진들에게 권한이 간 거죠.

감사나 사외 이사 제도 처럼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흘러간 사례들도 많았는데요.
점점 회사가 엉망이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제도의 실패도 있다고 봐요. 대표적인 사례가 사외 이사 제도죠. 사외 이사 제도는 IMF때 시작된 건데요. 뒤늦게나마 부실 기업을 감시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취지로 이러한 제도가 생겨났고 또 사회가 함께 동의를 했어요. 하지만 운영방식에 대한 고민이 적었죠. 그 결과 지금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외 이사제도가 어떻게 변질됐느냐 하면, 국세청이나 경찰청과 같이 기업 입장에서 부탁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사외이사’라는 직함을 달아줌으로써 공식적인 로비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기업 입맛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생긴 셈이죠. 이런 문제는 개인에게서 원인을 찾을 게 아니라 시스템을 정비해야한다고 봐요.

지금까지 다룬 사례들만해도 무척 다양한데요. 이 많은 사례들은 어떻게 모으셨나요?
처음 기획할 땐 기존까지 누적된 사례만으로 책을 집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원고의 중반을 지나니까 최근 사례가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그래서 중요한 부분들은 별도로 추가 취재를 했습니다. 좋은 사례의 경우 추천도 받았고요. 그렇게 최신 이야기를 업데이트하면서 동시에 잘되는 곳과 실패하는 곳을 함께 비교하고자 했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직장 민주주의를 다루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요. 일반 상식 같은 원론적인 얘기만 해서는 꼭 책을 읽을 필요성을 못 느끼잖아요. 그래서 버전 업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진행했어요.
덧붙여 제가 직접 찾고 조사한 것도 많지만, 출판사 덕분에 인터뷰가 성사된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한겨레라는 신문, 출판을 통해서 접촉했더니 공신력이 있어 수월하게 진행이 되더라고요. 그 점에 대해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이제 거의 마지막 질문인데요. 직장민주주의, 언젠가 가능하겠죠?
몰라서 못하는 거지 어려워서 못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직장 민주주의는 어려운 게 아닙니다. 다만 회사가 민주주의를 해야한다는 걸 여태 우리가 몰랐던 거죠. 그렇다고 사장을 투표로 뽑자, 뭐 그런 수준을 바라는 게 아니니까요. 실제로 엄청난 수준의 직장 민주주의가 진행되는 덴마크의 엔지니어링 회사 (전 직원의 연봉이 동일한 기업) 도 꾸준히 좋은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데, 지금 그 단계를 논하는 게 아니잖아요? 차근차근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 이후에 새로 계획 중인 책이 있나요?
조금 다른 방식의 글쓰기인데요. 소설을 생각하고 있어요. 주제는 자본주의예요. 사실 이미 시작했어야 하는데, 이번 책 준비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아직 한 페이지도 쓰지 못했어요. 최대한 열심히 준비해서 소설로 독자분들께 인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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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HS>회사<!HE> 문 <!HS>앞에서<!HE> 멈춘다 [정치/사회]  민주주의는 회사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 한겨레출판사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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