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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마음을 놓다』이주은 “그림 앞에서 자기 느낌에 솔직해지는 순간을 가지세요”

  • 201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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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컴퓨터와 휴대폰 화면 속 깨알같은 텍스트를 들여다본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수많은 목소리와 소음들이 나를 통과한다. 이유없이 지치고 고단하다. 그럴 때, 조용히 그림을 바라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헝클어진 마음이 차분해지고,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는 듯 위로를 받는다.  
그림을 통해 마음을 위로해주는 그림 치유 에세이, 『그림에, 마음을 놓다』가 출간 10주년을 맞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미술사의 위대한 걸작이 아니라도 그림은 우리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다정하고 섬세한 문체와 미술과 일상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으로 보여주었던 이주은 작가와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만나보자.
 
 
『그림에, 마음을 놓다』가 10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10주년 기념 개정판을 내면서 작가님의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이주은이라는 사람을 작가로 탄생시켜준 제 인생의 책입니다. 이 책이 첫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을 낸 후 비로소 저는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어요. 10년 동안 작가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살기 위해 어린이용 책에서부터 지식교양서, 문화예술칼럼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많은 글을 써왔습니다. 열심히 쓰고 또 쓰다 보니 어느덧 제 글을 찾아 읽는 독자층도 생겨났고, 영광스럽게도 우리 시대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지요. 이번에 10주년 개정판을 내면서 작가로서의 제 모습은 어땠는지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10년 동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작가님에게, 그리고 글쓰기에서요.
 
‘십 년을 하루같이’라는 표현이 생각나는데, 한결같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늘어짐 없이 밀도 높게 살았다는 뜻이기도 해요. 즐거운 반복 속에서 지냈어요. 10년이라는 세월이 대단한 것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하루하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두 잔씩 마시는 커피로 치면, 7,300잔의 양이지요. 글 읽기와 글쓰기는, 매일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몸에 밴 습관이 되어 있어요. 직무용 가방 외에, 읽고 싶은 책과 메모용 수첩, 노트북은 천가방 속에 따로 넣어 항상, 십 년을 하루같이 들고 다닙니다. 물론 가지고 나갔다가 그대로 가지고 돌아오는 날도 잦지만요. 일정한 습관 속에 살다 보면 시간의 흐름은 곧 산출량으로 이어집니다. 가령 1년에 책을 몇 권 읽는지,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을 쓰는 데 몇 달 걸리는지 예측 가능하죠. 너무 기계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글을 쓰려면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어요.
 
 
개정판에서는 어떤 것이 달라졌나요?
 
최근에 쓴 에피소드가 처음과 중간 부분에 끼어 있어요. 특히 첫 부분에 10년을 되돌아보는 글이 나오고, 이어서 10년 전의 서문이 시작되는데요. 영화로 치면 플래시백 기법처럼 느껴져요. 중년이 되어 조금은 무덤덤한 삶을 살고 있는 화자가 변화무쌍하고 예민하고 아슬아슬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 말이에요.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십 년 전 세상에 착지하여 젊은 시절의 자신을 관찰하는 기분도 듭니다. 독자도 그런 식으로 달리 읽게 되지 않을까요.
 
 
처음 『그림에, 마음을 놓다』를 읽었을 때 굉장히 신선했던 이유가, 전에는 '미술'에 대해서 '지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은 그림을 '감정'으로 보게 해서였어요. 그래서 그림에 대해서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었고요. 그림 자체를 소개하는 글이 아닌, 그림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의 글을 쓰고자 하실 때 의도했던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요. 그런데 여기서 앎이란 반드시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앎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정보와 논리를 통한 앎도 있고, 상상과 감성을 통한 앎도 있습니다. 학교 교육에서는 주로 시대 및 사회문화사적 맥락에서 미술을 다루지요. 하지만 저는 감성적 패러다임에서 미술작품에 접근해 본 것입니다. 지식만을 불균형적으로 추구하고 살다 보면, 감정 문맹이 되기 쉽습니다. 공감력이 떨어져서 아름다운 것에서 아무 감동을 받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어요. 예술의 본질은 느낌, 상상, 공감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까지 침투하지 못하고 정보의 단계에서 그쳐 버리면, 예술은 자신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이에요. 저는 독자들이 감정을 작동시킬 수 있도록 그림에서 감성이 깃든 이야기를 이끌어냈어요. 제 이야기에 이끌려 그림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그림들은 미술사의 엄청난 걸작들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도 많았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이유, 혹은 책에 쓰이는 작품은 어떻게 선정하는지 이야기해주신다면?
 
예술가의 생애를 읽어보면, 걸작에 이르기까지 자잘한 실수와 고민들, 방황과 소모적인 ㅠ 제자리 맴돌기, 악평과 거절 등 고통스러운 경험을 누구나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과감하게 기성의 틀을 깬 예술가의 놀라운 성취는 그 모든 답답한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이겠지요. 하지만 미술사에서는 그 과정들에 주목하지 않고 결과만 보여줍니다. 제가 조금 덜 알려진 작품을 선정하는 이유는 그런 놓쳐버리기 쉬운 이야기들을 꺼내고 싶어서예요. 물론 어떤 그림은 개인적으로 이끌려서, 내 마음을 올려놓고 보기에 좋을 것 같아서 고르기도 했고요.        
 
 
작가님 책을 읽으면서, '위대한 걸작'이 아니더라도 그 그림을 통해 마음이 위로받고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 동안은 '위대한 걸작'을 보면서 이 작품의 어디가 위대한지를 열심히 찾았다면 내 기준으로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거든요. 그림을 볼 때 어떤 마음으로 보면 좋을까요?
 
우선 그림 앞에서 자기 느낌에 솔직해지는 순간을 가지라고 독려하고 싶습니다. 감정이란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와 같은 것입니다. Emotion’의 어원을 보아도 ‘e(나오다)’와 ‘movere(움직이다)’가 합해진 단어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발산되어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감정을 드러내고 살기가 어려워져요. 그래서 몸과 마음 어딘가에 고여 있게 되고, 고인 것이 썩어 병이 되기도 하죠. 가끔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알아차리고, 만일 무언가 답답하게 정체된 감정이 있다면, 상상을 통해 그걸 흐르게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림은 내가 볼 수 없는 속수무책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그림으로부터 무엇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는 개인이 지닌 감수성의 정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림이 치유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림과 보는 이 사이에 다리가 놓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다리가 놓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림은 한낱 네모난 물질일 뿐이지요.
 
 
에세이와 그림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은 지금 다시 읽어도 참 절묘합니다. 글과 그림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굳이 글쓰기 기법을 공개하라고 한다면, 일종의 속임수를 쓴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거짓을 말한다는 뜻이 아니고 마술을 부리는 거예요. 현실세계와 그림세계를 구분 짓는 ‘액자’의 존재를 잠시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입니다. 가령 그림 속 디테일을 글로 한껏 부각시켜 내용에 몰입하게 만들면 액자 속과 액자 밖의 간극을 살짝 눈치 챌 수 없게 돼요. 그 상태에서 현실의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면 그림과 현실이 감쪽같이 이어진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림을 선별하는 작업이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에요. 내 경험을 풀어내기에 딱 알맞은 그림을 찾아내지 못하면, 내용이 억지스러워지니까요. 평소에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 떠오르는 감정이 있으면 그것이 휘발되어 버리지 않도록 메모해 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메모한다니 이상하게 들리지요? 그리고 그림을 나중에 또 볼 수 있도록 저는 그때그때 화집을 사서 수집하고 있습니다. 전시할 때 발행되는 도록은 중쇄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구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 동안 그림과 일상을 연결시키는 여러 권의 책들을 쓰셨는데요. 혹시 앞으로 쓰고 싶은, 만들어보고 싶은 형태의 책이나 작업들이 있으신가요?
 
새로운 작업을 구상 중이기는 한데, 아직은 ‘이거다’ 하는 게 없이 이것저것 생각만 많을 뿐이에요. 좀 더 동시대에 가까운 그림을 다뤄보고 싶은데, 현대미술은 저작권이 살아 있어서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가 없어요. 예술가의 사후 70년까지 저작권이 소멸하지 않으니까, 20세기 예술가는 물론 19세기 예술가 중에서도 간혹 저작권이 살아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출판사에서 저작권료를 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제 책 가격이 높아지니 걱정이지요. 살아 있는 예술가의 경우에는 이미지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그것도 시간과 노력이 드는 작업이랍니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나 『당신도, 그림처럼』은 제목의 단어 사이에 들어갈 쉼표 때문에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쉼표를 넣었을 때와 뺐을 때 전해지는 느낌이 다르거든요.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되었나요?
 
제목 속의 쉼표는 편집자의 아이디어였어요. 제목에는 되도록 부호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상식을 깼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쉼표가 있어서 그런지 ‘그림에’, ‘당신도’ 하고 나서 한 번 호흡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내달리는 당신의 삶 속에서 한번쯤 잃어버린 마음도 챙기자는 의미가 쉼표 하나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독자 중 한 분께서 “『당신도, 그림처럼』보다 『당신은, 그림처럼』이 어땠을까요” 하는 말도 해주셨지요. ‘당신은’이라고 쓰면, 당신이 특별해지는 효과가 있고, ‘당신도’라고 하면 그림에 방점이 있는 것 같죠?
  
 
『당신도, 그림처럼』의 개정판 서문에 쓴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상상이 가진 어마어마한 잠재력도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지 못한다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고요. 그림이 가진 힘은 그런 것 같더라고요. 가족에 대한, 행복에 대한,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나 사례들을 듣는 것보다 그 감정들을 보여주는 한 장의 그림에서 더 크게 감동을 받고 더 오래 인상 깊게 남으니까요. 그림이 좋은 이유, 작가님에겐 어떤 건가요?
 
그림은 ‘이래야 한다’ 하고 주장하거나, ‘이것이 옳다’ 하고 설득하려 들지 않아서 좋아요. 부처가 제자들에게 아무 말 없이 내민 연꽃 한 송이 같아요. 설법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의 소통이지요. 그림이 일상적 글쓰기의 소재로 매력적인 것은 가치관에 있어서 결론이 열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꿈 해몽이 그렇듯 그림 이미지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해석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화가가 자기 그림 속에 녹여낸 사랑, , 상상, 그리고 일상경험의 세계는 결코 그 개인만의 것이라고 볼 수 없어요. 우리가 그 경험을 나누어가질 때, 그림은 비로소 예술가라는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는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진정 예술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림 이미지로 생각하고 느끼고 소통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작품이 제아무리 가치 있고 위대하다 말해질지라도, 개인의 일상 속에서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와 닿을 수 없다면 그것은 앞으로도 그저 영영 닿기 어려운 머나먼 목표로만 남지 않을까요. 예술을 가까이 해보고 싶은 분, 그리고 자신의 삶을 한번쯤 리셋하고 싶은 분에게 『그림에, 마음을 놓다』와 『당신도, 지금처럼』을 권해 드립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사진제공_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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