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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노지양의 다정한 마음 번역 에세이『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 2019.01.03
  • 조회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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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80여 권의 책을 번역한 중견 번역가로 지금의 일도, 삶도 꽤나 만족스럽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삶에는 무언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때 라디오 방송 작가였고 소설가가 되고 싶어 문예창작 대학원도 다녔던 어제를 자꾸 돌아본다. 지나간 것이라 잊어 버리기엔 두고 온 것들이 너무 소중해서 그렇다. 포기하면 편하다지만, 왠지 미련이 남을 때면 나 자신이 조금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되고 싶은 나' '현재의 나'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져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단어들에 기댔다. 번역가로서 살아온 15년 동안 항상 곁을 지켜줬던 단어들에 자신만의 시선과 감성을 더해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번역가는 책표지에 인쇄된 자신의 이름 앞에 '옮긴이'가 아니라 '지은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되었다.
다정한 마음 번역 에세이 『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의 노지양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
 
 
 첫 책은 모든 작가님들에게 특별하겠지만, 특히 작가님께서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옮긴이에서지은이가 되어 인터뷰하는 소감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야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담이고요(웃음). 언젠가는 제 책을 쓰게 될 거라고 믿고는 있었지만 시기는 제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포기한 건 아닌데 욕심이 전보다 없어졌을 때, 사심 없이 글 쓰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을 때 기회가 왔어요. 그래서 더 담담하게 힘 빼고 쓸 수 있었고 지금도 기쁘고 설레면서도 평온합니다. 아빠가 저보고 대기만성형이라고 그러셨는데 그 말도 생각이 나네요.
 
읽으면서 왜 진작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는데요. 방송 작가 일과 번역 일이 책을 쓰는 일에 알게 모르게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이 도움이 됐고 어떤 점은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를 하기엔 개성이나 창의력이 부족하고 번역만 하기엔 잡생각이 많았어요. 늘 그렇듯 경계 인생이라고나 할까. 오락가락, 우왕좌왕하다가 시간을 많이 허비했죠. 방송 작가를 하면서 말하듯이 글 쓰는 법이나 유머 감각을 익혔고요. 번역은 체력과 시간이 많이 소모되지만 내 안에 사고력과 통찰력이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 있어요. 완성도 높은 산문의 구성과 묘사 방식을 자연스럽게 배우기도 하고요. 번역을 통해 몸으로 익힌 노동 윤리, 즉 되든 안 되든 책상에 앉아서 버텨보는 습관이 글쓰기에도 분명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만 쓸 때는 산책하거나 TV를 보면서도 아이디어를 건질 수 있고 문장도 떠올릴 수 있으니 놀면서도 일하는 느낌이 들어서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영어 단어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내신 것이 번역가라는 본업(?)과 잘 맞아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어요. 단어는 오래 전부터 모아오셨나요? 단어를 어떤 식으로 수집하셨는지, 단어와 메시지를 연결 지을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단어들은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머물렀어요. 그럴 때마다 일기장이나 수첩에 단어만 일단 적어두었어요. 글을 쓰기 전에는 그 단어가 어떤 형태와 생명력을 갖고 글 안에서 살아날지 알 수 없었다가 쓰고 나서야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단어를 간직해 왔구나 싶을 때도 있었고요. 반대로 어떤 단어나 표현은 보자마자 제가 평소 품고 있었던 소재나 주제와 연결해서 바로 쓰기도 했어요. 가끔은 글 먼저 쓰고 그에 연상되는 단어를 넣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영어 단어에서 연상된 에세이 쓰기는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꼭 책으로 묶이진 않더라도 생각나는 대로 취미 삼아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부모님의 언어를 읽으면서 울컥하기도 했는데요, 부모님께 책을 보내드리셨나요? 어떤 반응을 보이시던가요?
 
아빠는 우리 집의 가훈인 정직을 왜 넣지 않았냐고 하시고요. 엄마는 왜 이렇게 솔직하게 썼냐고 창피하다고 하세요. 아는 사람들에게 한 권씩 주려고 했는데 못 주겠다고. 그냥 고생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쓰지 왜 그렇게 자세히도 썼냐고. 그런데 그 글이 솔직하고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힘이 있었잖아요. 그 시절에 태어나고 자란 많은 분들이 교육을 못 받으셨는데 저희 엄마한테는 특별히 더 한이 되었나 봐요. 딸만 셋 낳고 더 안 낳으신 이유가 이 아이들을 고등학교까지 못 보내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고 해요. 아직까지도 공부 더 하지 못한 걸 아쉬워하고 의식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뭐가 어때? 뭐가 창피해? 엄마 아빠가 얼마나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분들인데? 중요한 건 그뿐이잖아요.
 
이번 책에도 잠깐 등장하지만 브런치나 SNS에 올리시는 딸과의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고 해야 할까요, 엄마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딸을 위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고요. 작가님도 딸인 동시에 딸을 키우는, 그리고 일하는 엄마로 살고 계시는데요, 딸과의 관계에서 특별히 신경을 쓰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제가 딸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결국 엄마를 닮았구나, 싶어져요. 어린 시절 엄마가 저희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시진 않았지만 동물적인 사랑이랄까, 강한 모성애를 느낀 적이 많아요. 그 사랑이 제 회복 탄력성의 토대가 되었고 방황하고 좌절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딸과는 대화를 많이 나누고 나한테 속하지 않은 대등한 인격체로 대하려고 노력해요. 어른인 제가 누구에게 명령받거나 무시당하면 얼마나 속상하고 비참하겠어요. 아이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해서 아기처럼 예뻐하면서도 인간으로서 존중하려고 합니다. 둘이 수준이 똑같아요. 중학생과 40대 엄마가 항상 팔씨름하고 쎄쎄쎄 하고 지내고 있어요. 아이는 이렇게 허술한 엄마만 보다가 다른 엄한 어머니들을 보면 놀라기도 하고요.
 
 
 
포기하면 편해요라는 말은이생망처럼 거의 현대인의 경구처럼 쓰이는데요(웃음), 어떻게 보면 이 사회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한 개인에게 체념과 포기를 조장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이제 첫 책을 내시고 꿈의 일부를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요, 포기가 안 돼서 편하게 살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 스스로가 가장 싫고 불안할 때가 포기는 못하는데 그 꿈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예요. 일단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 하고 싶다는 마음은 유지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그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게 되어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글쓰기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도 일기와 일상 글은 꾸준히 썼고 언젠가는 활용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아니면 그냥 간직하고 싶어서 책의 문장, 영화 대사, 신문 기사나 인터뷰를 꾸준히 메모했어요. 가시적인 결과물로 나오지 않으니 종종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꼼지락꼼지락 뭔가 하고 있어야 해요. 나를 저축한다고나 할까. 나중에 분명히 소중히 꺼내 쓰실 수 있을 겁니다.
 
당연한 얘길지 모르지만 독서량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에게는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고 썼는데, 요즘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좋은 의미로 ‘nemesis’라고 할 만한 작가가 있나요?(국적 무관)
 
많은 여성 작가들이 좋아하는 영화감독이자 작가 노라 에프런의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를 가끔 꺼내 읽는 편인데 그 책을 가수이자 작가인 오지은 씨가 추천했더라고요. 최근에 오지은 작가의 에세이들을 읽었는데 언어의 아름다움과 섬세한 감성, 엉뚱한 유머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서 즐거운 독서를 했어요. 문체가 정갈한 김신회 작가님의 에세이도 예전부터 즐겨 읽었고 이다혜 작가님의 에세이들도 찾아보는 편이고요. 아무튼 시리즈 중에 『아무튼 외국어』(조지영 저), 『아무튼 트위터』(정유민 저)도 유쾌하게 읽었어요. 작은 소재나 스쳐가는 감정을 잘 잡아내서 찰지고 예리하게 표현하시는 분들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취미도 많은 것 같아요. 책을 보니 그림도 그리고 야구, 농구도 즐겨 보고, 자전거도 타고 이제는 마라톤도 하고 계시는데요. 작가님께 취미란 어떤 의미인가요?
 
분산투자라고 할 수 있죠. 나를 위로하고 즐겁게 해줄 종목들을 다양하게 확보해놓으면 하나가 안 통할 때 다른 것에 기대면 되니까요. 나의 몸과 마음을 잘 살펴보는 버릇이 들어서 언제 어떤 약을 써야 할지 안다고 할까요. 스포츠나 영화로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 날엔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면 다시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거든요. 취미를 통해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도 참 재미있어요. 운동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도록 해준 인내심과 지구력이 몸을 쓰는 데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폭발적인 힘은 없지만 버티는 건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죠. 그러다 보니 기록 욕심도 나고요. 그런데 그림은 못 그려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구나, 어쩌면 그래서 계속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의 뒤를 이어 한 문장을 만든다면 지금 이 순간 어떤 문장을 만들고 싶은가요?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나는 옛날 일기를 꺼내 보며 울고 웃는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또 다른 주제의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직 번역을 좋아하고 의뢰도 들어오고 결정적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번역 작업은 계속할 거고요. 대신 양은 줄이면서 그동안 쌓아두었던 제 이야기 더 풀어보고 싶습니다.
독자들에게는 약간 늦었다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말고 계속 시도하고 경험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아니 좌절도 충분히 하시되 완전히 놓지는 마시라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 꿈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언젠가는 그동안 내가 뿌려놓은 말이 민망해서라도 시작하게 될지 몰라요.
 
| 기사 및 사진제공_북라이프
 
 
먹고사는 <!HS>게<!HE>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시/에세이]  먹고사는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노지양 | 북라이프
20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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