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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판사? 결국 기준은 인간이 정해야”『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정재민

  • 201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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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는 많은데 왜 판사는 눈에 띄지 않을까? 드라마 속의 판사는 대개 이런 모습으로 기억된다. 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가 서로 날선 공방을 벌이면 가만히 지켜보다 한 문장으로 마지막 판결을 읽는 존재로 말이다. 꽤 강한 임팩트가 있지만 대사 분량은 아주 적은 조연으로.  
 
법정 드라마에서는 아주 잠깐 등장하지만 실제 재판에서 판사는 그 마지막 판결을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읽고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엄청난 부담감을 느낀다. 누군가에 대해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단하고 어떤 벌을 얼마나 내려야할지에 대한 결정은, 조건들을 입력하면 답이 알아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는 10여 년간 판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사건들과 마주했던 저자가 판사이기에 가져야 하는 고민과, 판사이기에 볼 수 있었던 법정의 풍경들을 풀어놓은 책이다. 참고로, 저자는 판사 재직시절 소설가로 등단해 제10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고, 지금은 법정을 떠나 방위산업청에서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소설 쓰는 전직 판사 정재민 작가와의 인터뷰.
 

법관 생활을 그만두는 마지막 해부터 이 책에 들어갈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어쩌면 법정을 떠났기 때문에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 같기도 하네요.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하잖아요. 판사가 사건에 대해서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면 안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판사들이 다루는 사건들이란 것이 굉장히 감정을 자극하는 것들이에요. 사람을 죽이고, 미워하고, 다치게 하고, 원수처럼 싸우고 그런 것들이니까요. 그런 사건을 1년에 몇 천 건씩 겪고 그걸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보고 듣게 되면 아무래도 마음에 쌓이는 것들이 많죠. 마침 연재 기회가 생겼고, 내심 다른 일을 하기로 마음 먹었던 상태라 글을 쓰면서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정리를 하게 되었죠. 판사를 계속 했다면 안 썼을지도 모르죠.
 
책의 구성은 판사가 처음 재판을 배당 받을 때부터 판결까지, 법정에서 진행되는 재판 과정과 절차들을 떠올리도록 했던데요. 사실 변호사나 검사, 경찰이 하는 일들을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다뤄서 어느 정도는 알겠는데, 판사가 하는 일이나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는 잘 몰랐어요. 책에서 판사의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쓴 이유가 있었나요?   
법정에서 결국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판사에요. 판사의 판결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많은데, 판사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입장에서 어떤 생각으로 판결을 내리는지를 실제와 부합해서 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적 소통의 차원에서도요. 판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도 줄이고, 판사도 스스로 반성하고 좀 더 잘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일단, 판사의 업무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웃음). 판결문을 쓰기 위해서 정말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읽어야 한다는 것도요.
판사의 일이란 몇 천 페이지, 몇 만 페이지의 자료를 읽고 오랜 시간 법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고 생각해서 결국 판결문에 유죄냐 무죄냐, 징역 1년이냐 2년이냐 그 마지막 결론으로 구체화하는 것이죠. 판결문을 쓰는데 오래 걸린다기보다는, 판결을 위해 읽고, 검토하고, 생각하고, 조사하고, 비교하고 하는 것이 오래 걸려요.  
 
판사 재직 시절에 소설가로 등단해 여러 편의 소설을 쓰셨는데요. 소설은 언제부터 썼나요?
원래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법대 다닐 때 고시 독일어 공부하려고 독문학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에서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었죠. 그런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에요(웃음). 소설에 등장하는 유리알 유희는 모든 예술과 사상과 철학과 정신문명 일체를 담은 기호인데, 교수님한테 대체 유리할 유희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주저없이 '소설'을 은유하는 거라고 하시는데, 굉장히 그럴듯했던 거죠. 그 전까지 소설이란 시간 때울 때 읽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는 뭔가 근사해 보이고, 나도 한 번 쓰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끄적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소설가의 재능은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러다가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1회 공무원 문예대전'이라는 것이 생겼고, 거기서 장려상을 받았는데, 너무 기쁘고, 진짜 '장려'가 되었죠(웃음). 처음으로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스스로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서 상까지 받으니까 너무 좋았죠. 사법시험 합격한 것보다요(웃음). 그렇게 조금씩 쓰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글을 쓰는 순간의 ''는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쓸 때, 판결문을 쓸 때, 그리고 에세이를 쓸 때 각각 다른 사람이 된다 생각하진 않으시나요?
일부러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해요. 여러가지 페르소나 중에서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를 가지려고요. 그게 저의 삶에서는 중요하거든요. 지금 방위산업청 과장일 때, 판사였을 때, 그리고 소설을 쓸 때의 나는 완전히 다르죠.
그렇지만 이 책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어떤 페르소나도 가지지않은 글이에요. 판결문은 논리나 판례 뒤로 나를 가릴 수 있고, 소설은 허구니까 내가 만들어낸 페르소나 안에 나 자신을 숨길 수 있지만 에세이를 쓸 때는 나를 감출 수가 없더라고요.
 

책은 형사재판을 중심으로 썼는데, 형사재판은 민사재판과는 어떤 점에서 가장 차별화가 되나요?  
다른 재판은 사건을 재판하지만 형사재판은 사람을 재판한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다른 재판들이 돈과 권리, 이익의 문제를 다룬다면 형사재판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밝히고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요.
 
법정에서 재판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피고인에게 이름, 나이, 직업, 주소 등을 묻는 '인정신문'을 하잖아요? 그냥 절차적인 과정으로만 생각했는데, 작가님께는 그 과정이 중요했다고요.
인정신문이란, 지금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이 사람이 서류에 적힌 그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절차예요. 이름이 뭐고 나이는 몇 살이고 주소는 어딘지 등등의 정보를 확인하는 거죠. 그건 우리가 어떤 사회 구성원에게 표식을 붙여두는 거라서 어쩌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요. 사실 그런 정보들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진 않거든요. 제가 정재민이든 성재민이든 그게 나의 성격이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법정에서 저는 인정신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공식적으로는 재판이 저에게 배당되는 순간부터 그 사람에 대한 기록과 자료들을 읽으면서 피고인에 대해서 알게 되지만  인정신문의 시간이 판사와 피고인이 처음 만나는 시간이거든요. 시선을 맞추고 목소리를 섞으면서 비로소 내가 그의 판사가 되고 그가 나의 피고인이 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재판과 판결을 원하지만, 그 공정함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너무 다르잖아요? 누군가에게는 공정한 판결이 누군가에게는 억울한 것이 되기도 하고요.
'정의'에 대한 개념으로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보라는 말이에요. 세상 모든 일, 모든 사람들은 다 다르니까 다르게 보는 것이 공정하죠. 심지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르잖아요. 그렇게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를 해야 하는 것이 판사죠.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달라요. 누군가는 돈을 중시해서 금전적 손해를 끼친 것에 더 무겁게 죄를 매길 수 있고 신체적 완결을 중시하는 누군가는 상해를 입힌 것에, 또 누군가는 존엄과 감정적인 것을 훼손하는 것이 더 깊은 상처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 판결도 다를 수 있고 판결에 대해 느끼는 공정함도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요즘은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성범죄에 대해서 과거와는 다른 기준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는데,  결국 그 공정함의 기준이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일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정치라는 시스템 안에서 국민들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죠. 사실 민주주의란 개개인의 다름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국민들을 하나의 가치 아래 통합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요.
 
판사로서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공정함'에 대해서 점점 더 고민이 깊어질 것 같네요.
대개는 유죄인 것도 같고 무죄인 것도 같아요. 대개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고요. 참 안 됐다 싶기도 하고 그래도 나쁘다 싶기도 하고, 나라도 그랬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모든 말을 동시에 할 수는 없어요. 판사는 결국, 그 모든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결론, 유죄면 유죄고 무죄면 무죄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니까요. 제가 하는 일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같은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 것들이 개인적으로 판사를 그만두게 된 중요한 이유기도 하고요.  
 
요즘 사람들은 경험 많은 판사의 재판보다 인공지능의 재판을 더 선호할거라는 이야기도 하던데요. 인공지능이라면 사심없이 객관적인 재판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요.
요즘 드러나는 일부 사건들 때문에 더 부정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판사들은 생각보다 훨씬 공정하게 재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계속 공정함을 의심받는 상황이라면 외관의 공정함을 달성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일부 도입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인공지능의 재판도 결국은 알고리즘을 세팅하는 사람들의 편향성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올 거에요. 그리고 알고리즘으로 작동되는 인공지능이라도 결국 가치판단의 기준은 인간이 정해줘야 해요. 예를 들어, 전치 3주와 동일한 형량을 적용하는 범죄는 3천 만원을 빼앗은 것이냐 3백 만원을 빼앗은 것이냐, 엉덩이를 만진 추행은 2주 상해와 동급이냐 5주 상해와 동급이냐, 그런 기준은 결국 인간이 정해야 하고 그 기준에 대한 합의는 판사 개인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해줘야 하는 것이죠. 그러니 인공지능의 재판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에요.  
 
요즘 인터넷과 SNS, 여론을 통해서 어떤 사건이 알려지면 거기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단죄를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것들이 염려스러워요. 나중에는 예전에 알려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이 밝혀질 때도 있던데 이미 여론의 단죄를 받아서 다시 회복하기 힘든 경우도 보거든요.
판사들은 간단한 사건도 최소 6개월 동안 재판을 합니다. 보통 재판을 할 때 몇 천 페이지의 자료를 읽고요. 그렇게  봐도 부족해요. 기록을 다 믿을 수도 없고 말과 글로 전하지 못하는 것도 많으니까요. 극과 극으로 다른 쌍방의 이야기를 다 듣고도 자신이 없을 때가 많아요. 그러니 짧은 기사 하나를 읽고 창자에서부터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걱정이 되죠. 그런 경향들이 여러 언론 매체들에 의해서 부추겨지는 것 같은데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서구사회를 '선진'사회라고 하는 건 우리보다 잘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경험했고 그래서 먼저 반성을 했다는 의미에요. 서구사회에서도 몇 백년 동안 마녀사냥이 지속되면서 억울한 사람들이 몇 만 명씩 죽어나갔잖아요. 그런 비극을 겪은 후,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법제도를 강화하게 된 거죠.
법이란 본능에 반하는 거예요. 본능에 편승하는 것이라면 법으로 만들어서 강제할 필요가 없죠. 왜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하겠어요. 인간의 본성은 유죄를 추정하고 싶어하거든요. 그건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거에요. 하지만 서구사회는 그런 무분별한 유죄추정으로 엄청난 비극을 겪었고 그것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반성을 하고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헌법의 근본 원리로 넣은 것이에요. 그런 역사를 거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사회에서 자리잡은 것이고요.
우리는 서구사회가 오랜 시간 경험하고 뼈저린 반성과 후회를 통해 얻은 교훈을 제도만 쉽게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그 원칙들이 사회에 자리잡기까지는 과정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사람이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지금은 판사직을 떠나서 판사를 바라보니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있나요?
판사를 그만두기 전에 빈 법정에 가서 피고인 자리에 한 번 앉아본 적이 있어요. 거기에 앉으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막상 별 감흥은 없더라고요. 그런데 판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다른 일을 하다보니, 정말 다르더라고요. 판사는 논리가 중요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논리를 압도하는 상황들이 너무 많아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억울하게 의심과 불신을 받는 경우도 있고 기소되었다 무죄로 풀려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경험하니 재판은 정말 잘 해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을 하게 되요. 형벌권은 굉장히 절제해서 사용되어야 하고, 되도록이면 사람을 믿어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판사는 판결을 내리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일이다보니 상처도 받고 자괴감도 있었어요. 나도 제대로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재판하나, 그런 생각들요. 그럴 때면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갔어요. 드라마 <심야식당>을 보면 주인이 별다른 위로의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나름의 소박한 음식을 만들어주잖아요. 그걸로 하루를 버티며 살아갈 위로를 얻고요. 그런 소박한 음식을 만드는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잘 먹어주세요(웃음).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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