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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보통의 여자들도 축구를 하고 있다『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김혼비

  • 2018.06.29
  • 조회 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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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은 어째 분위기가 잘 안 뜨네' 생각했는데 예선 마지막 경기, 독일전에서 엄청난 걸 보고 새삼 깨달았다. 축구는 역시 매력적인 스포츠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보는' 축구로는 축구의 진정한 매력을 다 헤아렸다 할 수 없다. 축구를 직접 할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좋아하니까 직접 하고 싶어지고, 직접 하면서 새로운 매력을 느낀다. 그건 세상 대부분의 일에 다 통용되는 법칙 같은 것이다. 그 대상이 축구라고, 축구를 하는 사람이 여자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축구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는 전혀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우아하고, 호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축구하는 여자'라고 하니 굉장히 특별한 것 같은데,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릴께요.  필명도 재미있는데, 필명은 소설가 닉 혼비의 그 '혼비', 맞죠?
안녕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축구화 끈색상 디자이너라든지, 축구골대 수평 조율사라든지(이런 직업이 진짜로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정말로 뭔가 굉장히 특별한 이력을 내놓고 싶은데, 심심하게도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에요. , 필명은 닉 혼비의 그 혼비가 맞습니다.이 책은 모처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단정히 정리해서 낸 것인데요, 연재 당시에 쓸 필명을 지어야 했는데 축구에세이 하니까 닉 혼비의 『피버 피치』가 떠올랐고, 마침 닉... 세 글자라서 한글이름으로 활용하기도 좋을 것 같아 반 장난 삼아 김혼비라고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었어요. 나중에 책으로 내게 되었을 때, 책에 쓰기에는 너무 장난스러운 이름 아닌가 싶어 바꿀까도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이 이름이랑 정이 들어버려서 그만
 
축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축구를 해 본 적도 없고 당연히 축구를 하고싶다 생각한 적도 없었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어려서부터 운동하는 걸 좋아해서 점심시간마다 친구들이랑 농구, 배구, 핸드볼 온갖 걸 다 했는데 어쩐지 축구만큼은 단 한 번도 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여중을 다니고 여고를 다녔는데 두 곳 다 운동장에 축구 골대가 아예 없기도 했구요. 농구 골대도 배구 네트도 있었는데 축구 골대는 없었어요. 그런 은근한 축구 배제적인 분위기에서 자라서인지 성인이 되어서 오며가며 남자조기축구팀이나 남자클럽축구팀을 종종 보아오면서도 어딘가에서 보통의 여자들도 그렇게 축구팀을 만들어서 축구를 하고 있을 거라는 것에 대해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직접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예 몰랐으니 하고 싶다는 희망이 생길 턱이 없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여자축구팀 회원 모집하는 글을 어딘가에서 보게 되었고, 그래! 저런 게 있구나! 깨달으면서 워낙에 축구팬이기도 했으니 그때부터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자 축구팀이 제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런데도 제대로 눈에 띄지 않았다는데 또 놀랐고, 제가 축구하는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는 것도 놀랍더라고요. 작가님이 여자 축구팀에 들어가면서 생각과 달랐던 건 어떤 것이었나요?
남자팀 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회를 개최하면 전국에서 80여 개 팀이 몰릴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기존 팀들이 전부 대회에 신청하는 건 아니니까 80팀의 2-3배 정도의 팀들이 전국에 있지 않을까요. 또 놀랐던 점은 대학 축구동아리를 빼고 따져 봤을 때 가장 높은 비율의 연령대가 40-50대라는 점이었어요. 근데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게,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육아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나이대가 40-50대거든요. 아마추어 여자축구팀을 통틀어도 현재 미취학 자녀를 둔 선수는 매우 드물고,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30대가 여기에 딱 걸리거든요. 육아가 늘 인생의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는 여자들의어떤현실을 반영하는 거겠죠.
 
축구장에서의 '맨스플레인'은 예상은 했지만 책을 읽어보니, '역시나'네요. 축구장의 맨스플레인, 자주 경험하시죠?
. 사실 저 같이 축구 시작한 지 이제 3년 좀 넘은 사람의 경우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맨스플레인인지 나누기 애매한 구석이 있어요. 실제로 아직 저는 선수로서는초짜니까요. 그게 제가 여자라서 하는 설명인지, “초짜인 사람에게 하는 설명인지 칼같이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하지만 축구경력 10년 넘어가고, 심지어 프로선수였던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코칭은 대부분 맨스플레인이죠. 아무리 그래도 축구로 프로까지 찍어본 여자들인데 축구를 취미로만 해 온 남자들이 더 알면 뭘 더 알겠어요. 실제로 경기에서 붙어봐도 기본적인 신체조건상 남자들이 체력이나 스피드면에서는 우세하지만 테크닉으로는 프로출신 여자들 못 따라오는데도 테크닉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심지어 룰에 대해 가르치려 드는 남자도 있어요. 선수출신에게 경기룰을!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축구도 기본기를 닦는데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이 지루할 수도 있잖아요. 작가님은 축구 인생(?)에서 기본기 닦으면서 위기가 온 적은 없었나요?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한 건 무엇이었나요?
위기가 현재 와 있는 상태예요, 하하. 뻥축구에서의 뻥볼차기라는 일종의 꼼수로 2년 차까지는 어떻게 넘겼는데 그것만 계속 할 수는 없더라구요. 역시 한발 더 나아가려면 안정적인 드리블로 잘 치고 나가고 날아드는 공 트래핑해서 잘 잡아 놓고 해야 하는데 그런 세밀한 기본기들이 잘 안 늘어요. 약간 실력이 멈춰 있는 시기예요. 운동신경이 꽤 있어서 운동을 빨리 배우는 편인데 이렇게 더디게 느는 운동은 축구가 처음이에요. 공의 리듬에 저의 리듬을 잘 맞춰야 하는데 제가 음치에 박치여서 이걸 잘 못하는 걸까요? 아직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게 만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지만, 결국은 극복할 거라고 믿게 만드는 것은 아직 그 과정을 한번도 지루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에요. 답답할 때는 있지만 지루한 적은 이상하게도 아직 없어요.
 
보통 운동을 해도 1년 이상 계속 하기 힘든데, 작가님도 그렇고 팀의 다른 분들을 보면 다 몇 년씩 계속해서 축구를 하시잖아요. 축구를 계속하게 되는 그런 이유, 그만둘 수 없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역시 재미 아닐까요. 축구는 좀 뱀파이어 다단계 같아요. 왜 뱀파이어가 한 번 피 맛을 보면 각성해서 그때부터는 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어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공맛을 한 번 제대로 보면 공을 차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공 뱀파이어가 되는 것 같아요. 정말로 이제는 훈련 시간 외에도 일상에서 답답한 일이 있거나 우울하면 공 들고 근처 중학교 운동장 가서 몇 십 분이라도 공을 차게 되고 그래요. 탁 트인 그라운드에서 공을 뻥뻥 차고, 빗맞아서 잘못 굴러가는 공 잡으려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전력으로 달려가고, 마구 튕기는 공을 발로 탁 잡아 올리는 데에 백 번 천 번 연습 끝에 성공하는 순간들이 너무 짜릿해요. 게다가 팀플레이다보니 한번 팀 내에서 제가 해야 할 몫이 정해지면 책임감까지 생겨서 쉽게 그만두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예쁘고 핏 좋은 몸이 아니라 '축구를 잘 할 수 있는 몸'에 대한 욕망으로 바뀌었다고 쓴 부분이 좋았어요. 종아리 알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여자들을 떠올리니까 웃음이 터지지만 어쩐지 리스펙트하게 되고요. 축구를 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른 시선, 다른 욕망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주신다면요?
안 그래도 엊그제 한 여성 인터뷰어가 종아리 알, 지금은 어느 정도로 커졌냐고 물으셨어요. 제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보여드릴까요? 물으니까 네! 보여주세요!라고 하셔서 신나서 보여줬는데 보고 싶어하셔서 어쩐지 기뻤어요. 크크. 책 속 글을 쓸 때만 해도 애기 알통이었는데 지금은 더 자라서 제법 어른스러운 티가 나거든요 알통이. 사진 첨부 할까요? , 아닙니다아무튼 이런 게 싫지 않다 못해 자랑스러워지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알 뿐만 아니라 축구를 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거든요.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니까 기미나 잔주름도 생길테고 늘 어딘가에 멍이 들어있고 허벅지도 굵어져가고. 소위 말해보기 싫은것들이 생기는 건데 이것들이 보기 싫지 않아진 것이 작지만 큰 변화 같아요. 아직도 사회가 정해주는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전보다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축구하니까 당연하잖아? 라는, 나의 선택에서 오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쿠션효과가 생기는 걸까요?
, 그리고 힐을 참 좋아했는데 3년 전부터 안 신게 됐어요. 혹시 발목 삐끗해서 축구하러 못 갈까봐 생긴 버릇인데 운동화랑 단화만 신게 되니 거기에 맞춰 옷 스타일도 조금씩 변하고. 이런 변화들이 생겼어요.
 
'축구하는 여자들'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책이었어요. 굉장히 터프하고 또 굉장히 평범하고 또 굉장히 특별한 분들이던데요. 축구는 아무래도 팀 스포츠니까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기도 할 것 같은데요. 패스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쌓여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고요. '축구인'들의 매력을 몇 가지만 이야기해 주신다면?
가장 감명받았던 건, 축구를 10년 가까이 했다는 이력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50대 언니들 체력이 굉장한 거예요. 훈련 시작 전에 개인 스트레칭을 하는데 쉰 둘, 쉰 셋인 언니 둘이 나란히 철봉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린 채로 허공에서 상체를 들어 윗몸 일으키기를 3세트 하더라구요! 저는 침대에 누워서도 못하는 건데. 30대인 저보다 지구력도 체력도 월등한 언니들 보면서 늘 자극받아요. ‘나도 네 나이에는 너 같았어라는 말 들으면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강인해질 수 있나 싶어 두근거려요. 그 강인함이 가장 큰 매력 같아요. 그리고 대체로 기가 세 진다는 거? 축구 하다보면 몸싸움 하지, 크게 항의할 일도 생기지, 그러다 보니 화를 표현하는 법을 저절로 학습하게 되는데 어디가서 부당한 일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여자들, 매력적이지 않나요?
 
 
축구인으로서의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주변을 보면 축구를 하다가 한번쯤은 큰 부상을 당하더라구요. 그래서 항상 언젠가 제게도 그런 날이 오긴 올 거라는, 거의 이미 확정된 어떤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으로 축구를 하는데요. 그때 당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가벼운 부상을 당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하나 있구요. 그리고 열정의 크기로 따지면 책에 나오는 다른 축구하는 여자들에 비해 제가 많이 부족하다고 늘 느끼는데요. 사실 이것보다 더 큰 열정을 품기에는 제 그릇이 작아서, 여기서 더 좋아하고 더 빠져들면 삶의 균형을 잡기 힘들어질 것 같거든요. 너무 뜨거운 불에는 크게 데이니까요. 그래서 딱 지금 정도로 적당하게 (누가 보기에는 이미 안 적당하다고 생각할 것 같지만요 하하), 오래 마음에 품을 수 있을 만큼 적당한 온도로 축구를 계속 즐기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쩌다가너무너무 재밌다” “웃다가 울다가 하며 읽었다같은 감상글을 보게 되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반갑고 기쁘더라구요. 이거 독자 반응 인용해서 우회적으로 이 책 재밌다!고 은근히 어필하려는 거 맞고요제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하잖아요. 재미도 재미지만, 무엇보다 어떤 대상을 온 마음과 온몸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읽으시는 분들께도 옮겨갈 수 있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이미 읽어주신 분들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전하고 싶었던 이 감사를 말할 수 있는 기회, 이렇게 주셔서 감사해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사진제공_민음사

우아하고 <!HS>호쾌한<!HE> 여자 축구 [시/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김혼비 | 민음사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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