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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도 결국 인간애에서 출발해야”『미스 함무라비』문유석

  • 2018.06.21
  • 조회 3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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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 열혈 초임 판사와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엘리트 판사, 그리고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부장 판사. 서로 다른 개성의 판사들이 펼치는 생활밀착형 법정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부장판사가 쓴 원작 소설을 원작자가 대본작업에도 참여해 한층 현실적이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만들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드라마다.
칼럼과 에세이, 소설과 대본까지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법과 사람,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문유석 판사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화제입니다. 원작뿐만 아니라 대본도 직접 쓰셨는데, 처음 경험한 드라마 작업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협업의 재미를 느꼈습니다. 아무리 개인주의자라도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가 봐요. 특히 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처음에는 오브제라고 생각했는데, 작업 과정에서 공동창작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배우라는 사람고유의 성격과 매력이 캐릭터와 이야기를 변화시키더군요.
 
처음 『미스 함무라비』가 출간되었을 때, 소설이라고 해서 좀 놀랐어요. 소설을 쓰신 이유, 그리고 소설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뭔가 거창한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아니라, 그냥 그 원형인 이야기로서의 소설이면 쓸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호메로스, 아라비안 나이트, 춘향전결국 핵심은 그냥 이야기니까요. 저야 어차피 황정은, 한강, 김연수가 아닌데 부담 가질 필요가 있겠어요? 문학이론도 작법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20년 동안 법정에서 참 많은 진짜 이야기를 봤고, 그걸 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 안에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그걸 그냥 써내려갔을 뿐이니 어려운 점은 별로 없었지요.
소설이라지만 중간에 더 깊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칼럼이나 에세이처럼 직설적으로 죽 쓰기도 했지요. 『레미제라블』에서도 중간에 당시 프랑스 사회상이나 파리 지하도 구조 등에 관해 한참 설명을 늘어놓다가 줄거리로 다시 돌아오곤 하잖아요? 소설 기법은 다양하게 발전해왔고, 이런 소설, 저런 소설 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의 캐릭터는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다고 하잖아요. 문유석 작가님께서 현재 부장판사의 직책이시니 한세상 부장판사와 동일시되어야 할 것 같은데, 주인공이자 타이틀롤은 초임 판사이자 20대 여성이더라고요. 주인공을 20대 초임의 여성 판사로 설정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미스 함무라비』를 쓸 당시 젠더법연구회, 법원합창단, 독서토론모임 등을 통해 젊은 여성법관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고통을 접하며 충격을 받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다름이 결국 이 보수적인 조직을 바꿔내겠구나 싶기도 했지요. 그 모든 것이 박차오름이라는 한 인물로 체화된 것입니다.
 
한세상, 임바른, 박차오름 세 캐릭터가 굉장히 다른 성격을 가지는데요. 세 인물을 통해서 각각 보여주고 싶었던 판사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나요?
인간이란 복합적인 존재이니 꼭 한 가지 성격만 있지는 않지요. 주인공들도 사실 여러 면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 중 눈에 띄는 부분이 도드라져 보일 뿐입니다. 개인주의, 공동체주의, 냉소주의, 이상주의, 현실주의, 사법철학으로서의 사법적극주의와 사법소극주의, 정치적 보수와 진보의 멘탈리티 등 다양한 대립항들을 세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미스 함무라비> 포스터

 소설 속 상황들이 굉장히 현실적이라서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고깃집 불판이 아이에게 떨어진 사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 상대의 말을 들어야만 해결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드라마에서도 이 에피소드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좋더라고요. 이 에피소드는 어떻게 쓰게 된 건가요?
예전에 법원 기사에 달린 어떤 댓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뜨거운 걸 쏟고도 사과 한 마디 없는 주인에게 화가 나서 소액재판을 걸었는데, 판사가 귀찮다는 듯이 대충 돈 조금 받고 취하하라고 강권하더라는 얘기였지요. 그걸 읽고는 생각해봤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누굴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다는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이 분은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 이 분은 그렇게 분노했던 걸까. 남들 보기엔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그 사람에게는 너무나 아픈 손톱 밑의 가시가 있지 않았을까. 그때 해본 상상의 결과가 불판 에피소드입니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시도한 회사원, 잊힐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인, 아이들의 양육권 문제를 다룬 이혼 소송 등 각각의 에피소드를 보면 판결이 내려졌다고 모든 것이 깔끔하게 결론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설 속의 판사들도 이런 사건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요. 혹시 좀더 속 시원한 결말을 그리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속 시원한 결말을 원할지 모르지만, 속 시원한 결말 같은 건 현실엔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쓴 소설이니까요.
 
폭력 전과 26범 주폭(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노인 에피소드는 법의 한계와 사회 구조의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법 적용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범죄자에 대해 어디까지 정상참작을 해줄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고민되기도 하고요. 그런 경험이 많으실 텐데 그런 경우 스스로에게 되뇌는 원칙이나 그런 게 있을까요?
20년 넘게 했는데도 아직도 찾고 있습니다.
 
소설 제목인 『미스 함무라비』는 박차오름의 별명이기도 한데요. 함무라비라고 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굉장히 냉혹하고 가차없는 법 적용의 대명사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책에서 박차오름은 굉장히 인간적이고 열정적인 판사로 그려지는데요. 박차오름에게 '미스 함무라비'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는 어떤 건가요?
지금 우리에게 함무라비 법전은 즉각적인 정의의 상징처럼 느껴지지만, 함무라비 왕 시대는 귀족의 눈에는 평민의 목숨, 귀족의 이에도 평민의 목숨, 아니 어쩌면 일가족 전체의 목숨과 같이 여겨지던 시대입니다. 그 시대를 생각해보면 함무라비 법전은 귀족의 눈에 평민의 눈을, 귀족의 이에 평민의 이를규정했던 엄청나게 이성적이고 인도적인 법이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정의도 결국 인간애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스 함무라비는 이 사회가 박차오름 같은 인물을 바라보고 규정하는 피상적인 시선에서 붙인 별명이지만, ‘본의 아니게본질적인 질문을 환기시키는 이름이기도 한 것이죠.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는 말이 소설 속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됩니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라는 질책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말하라는 권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 문장을 소설 속에 녹인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것은 2015 5월부터 2016 2월까지였습니다. 이것으로 대답이 될 것 같은데요.  P.S. 결국 시민들은 권리 위에 잠자지 않으셨지요.
 
실제 판사들의 일과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드라마에서는 판사, 변호사, 검사, 피고나 원고 외에 서기라든가 법정 경호원 등이 등장해서 이 또한 재미가 있었고요. 드라마에서 더 많은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이유가 있었나요?
질문하신 분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원작 소설이 연재를 하다보니 분량의 제약도 있고 처음 소설을 쓰다보니 인물들의 관계를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법원 내 보여주지 못한 직업군들이 많았어요. 드라마 대본을 작업하면서 원작소설에 없던 캐릭터들을 많이 등장시켰습니다. 속기사, 법원경위, 실무관, 참여관. 사실 재판은 판사들만의 업무가 아니라 여러 분야의 분들이 함께하는 협업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궁금하시면 본방사수(웃음).
 
『개인주의자 선언』』의 저자 사인본에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적 연대의식이 조화를 이루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꾸며”라고 적어주셨더라고요. 개인주의라고 하면 이기적인 깍쟁이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어떤 모습인가요.
개인주의자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과 연대할 줄 알고, 자기 자유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랄까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이외에 무슨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까. 고맙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leftfield@kyobobook.co.kr
사진제공_문학동네
  
미스 <!HS>함무라비<!HE> [소설]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 문학동네
2016.12.02
개인주의자 <!HS>선언<!HE> [인문]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 문학동네
201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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