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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우리는 앞으로 나가고 있어요”『그녀 이름은』조남주

  • 2018.06.07
  • 조회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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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도 않고 별일도 아니다. 망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그녀들이 운을 떼는 말들은 그런 말들이다. 분명 특별하지도 않고 별일도 아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도 그와 비슷한 경험, 그와 일맥상통하는 감정들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 그녀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을 건드리고 오래 남는다.
 
82년생 김지영』 이후 조남주 작가가 2년 만에 선보인 신작 소설집 『그녀 이름은』은 아홉 살부터 일흔 아홉 살까지 60여 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해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28편의 소설로 다시 쓴 작품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그녀'들의 목소리를 되돌려주는 소설 『그녀 이름은』의 조남주 작가와 만났다.
 
 
책에 담긴 이야기들에는 굉장히 많은 드라마와 감정들이 담겨 있지만, 어조가 차분하고 담담해서 더 이상적이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직접 만나거나 전화 인터뷰를 한 실제 인물들에 기반으로 한 것이라서 고민이 많았어요. 이분들을 너무 불행하고 우울하게만 그리고 있진 않나, 반대로 이 일을 너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쓰고 있지는 않나. 그래서 톤이라든지 어조나 태도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너무 불행하게만 보이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투사처럼 보이지도 않게, 그분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리고 싶었어요.
 
소설을 통해서 여러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읽다보면 여성들 사이에도 이처럼 다양한 '다름'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취재 대상을 다양하게 하려 했던 건가요?
소설은 작년 1년 동안 신문에 연재했던 팩션을 기반으로 했는데, 2017년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이슈가 있거나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그에 관련된 분들을 찾아서 만났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연령대, 지역, 직업의 여성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직접적인 주제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러 작품들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가 은근히 깔려 있던데요.
쓸 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교정지가 와서 쭉 읽어보니까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인 것들이 많더라고요. 편집자분은 처음 원고가 왔을 때부터 엄마와 딸 이야기라는 걸 느끼셨다고 하셨지만요(웃음).
제가 딸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엄마와 딸 사이에는 하나의 단어, 하나의 감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으니까요. 그게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요즘 서점가에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루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데, 엄마와 딸의 관계도 예전과는 다른 부분이 많아요.
저의 엄마 세대, 그리고 요즘 젊은 엄마 세대들은 가치관이나 감정들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제가 경험했던 저희 엄마 세대는 항상 희생하는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미안하면서도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런 원망스러운 감정도 있고요. 그에 비해 지금 엄마가 된 젊은 세대들은 자기 일도 있고 욕망도 달라요. 그게 '다른' 엄마의 모습으로 발현되는 것 같아요. 저도 딸 세대가 우리를 보면 어떤 감정을 품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런 점에서 「조리사의 도시락」 속 8년차 학교 급식 조리사 엄마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자식들에게 먹이는 마음으로 조리사 일을 시작하지만 '집에서는 엄마의 마음으로 요리하고 학교에서는 조리사의 마음으로 요리해'라고 한 말이요.
그 말은 조리사분께서 하신 말씀이었어요. 자료 조사를 하면서 관련 기사를 읽을 때 급식실 조리사들에 대해서 엄마, 엄마 같은, 엄마의 마음,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걸 많이 봤고, 저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들으니까, 처음에는 가벼운 아르바이트, 용돈벌이로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이게 '내 일'이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갖게 되고, 일한 만큼 보상이나 대우를 받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가사와 관련된 노동을 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엄마의 마음으로'라는 편견을 가지고 접근했구나 하는 걸 그때 깨달았거든요.
 
청소나 조리사, 이런 '노동'에 대해서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죠. 책에서는 그런 감춰진 노동들을 끄집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운전의 달인」에 등장하는 여성 버스운전사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남자들이 많은 곳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관련된 직업을 찾아보는데, 제가 계속 스포츠라든지 의학, 이런 전문직을 찾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살면서 운동선수를 가까이서 자주 볼 일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 직업 말고, 내가 일상에서 많이 접하는 남초 직군은 무얼까 생각해보니까 늘 타고 다니는 버스, 버스 운전기사가 생각났죠. .
 
 
소설 속에서는 엄마와 딸의 관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사이의 다양한 관계들이 중심이다 보니 남성들은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남자들을 방관자로 다루지는 않는데요. 방송국 파업에 동참한 아나운서 부부 이야기 「목소리를 찾아서」는 미묘하게 감정이 엇갈리지만 결국은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부부 관계를 보여줍니다.
그 에피소드는, 아나운서는 아니고 다른 직종에 있는 분께 들은 이야기에요. 비슷한 업종에 있으면서 서로 응원도 하지만 은근히 경쟁도 하는 부부의 이야기였어요. 부부 사이에 묘하게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나보다 안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닌데 남편이 더 잘 되고 있으면 이상하게 신경 쓰이는. 만약 내가 남편보다 잘 나가면 남편은 어떤 감정을 가질까? 남편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 같다는 얘기였는데 그 얘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책 속에서는 방송국 파업 현장, KTX 해고 승무원들의 싸움, 정권 퇴진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이화여대 점거 농성, 그리고 촛불집회의 현장처럼 '광장'이 중요한 공간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어쩌면 '광장'을 경험했다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큰 사회적 경험을 같이 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재수의 변」에 나오는 '비운의 99년생'들이,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고, 광장에서 함께 촛불을 들고,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경험을 하면서 이 고통을 나만의 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가 같이 이겨나가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요. 그 경험들이 우리를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공원묘지에서」에 등장하는, 엄마의 간병 독박을 쓰는 미혼 여성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도움이 되지 않은 다른 형제들에 대한 원망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응시하는 차분한 태도가요.
인터뷰를 한 분은 사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아니었어요.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지금 혼자 살면서 감당해야 하는 것도 무겁지만 선배들을 보면 나중에 부모님의 간병이나 보살핌이 결국은 미혼인 딸의 부담이 되던데 그게 가장 부담스럽고 두렵다고 하더라고요.
소설 마지막에,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 해 줄 가족은 없을테지만 그걸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내 유골함을 들고 갈 이가 이 일에 능숙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한 건, 결국 이런 문제가 가족 안에서 개인적 차원으로 서로 책임지고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으로 책임을  지고 전문가가 처리해주기를 바라는 바람을 담은 거였어요.
 
소설 속에서는 일과 가족, 그리고 사회 여러 곳에서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 싸움이란 것이 이기기가 쉽지도 않고 또 이긴다고 해서 내가 얻을 게 크게 없는 싸움인 경우가 많아요. 미투운동 같은 경우도 본인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상처가 더 클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한 명, 한 명만 보면 가다 포기할 수도 있고 본인이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수도 있어요. 원하는 대로 진상규명이 되지 않고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실패라고 말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종착지까지 끌고 갈 수 없더라도 그 뒤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어쨌든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어요. 결코 중간에 멈추거나 퇴보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뉴스를 보면서, 여러 사람들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그리고 싸움을 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이나 사람들 말을 들으면서 느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성공하고 끝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어쨌든 계속 앞으로 가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작가님 작품들을 보면 개인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들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은데요. 에필로그에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쓰신 것도 관련이 있나요?
제 성향이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내면이나 특수한 성정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사회 구조, 그리고 그 사회 안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한 인간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전공이나 직업도 그런 쪽으로 선택을 해왔었고요.
제가 소설과 관련한 수업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만났던, 방송일을 하면서 취재하고 관심가졌던 이야기들, 사람들이 지금 제가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가장 큰  공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아이가 나보다 더 사회의 구성원으로 오래 살아갈테니까요. 예전에는 시야가 나에게로 제한되었다면 이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더 시야가 넓어지고 길어진 면이 있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려요.
82년생 김지영』을 내고 독자분들의 반응을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책은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기 주장을 밝히면서 확장되는 것이라는 걸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너무 감사하고 또 힘이 되는 경험이었어요. 이번 책도 그렇게 독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서 확장시키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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