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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선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요”『기다리는 행복』이해인 수녀

  • 20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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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행복이 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새로운 화면이 뜨는 3초를 못 기다리고 초조해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되길 기다리며 하루하루 설레어 하던 때를 기억하면, 손편지 써서 우체통에 넣고 뿌듯함과 그리움이 섞인 감정으로 답장을 기다리던 때를 생각하면, 기다림은 분명 행복이다.
 
2008년 암투병을 시작하고 이를 극복해내며 꾸준히 맑고 고운 글들을 써온 이해인 수녀가 6년 만에 펴낸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 은 평범한 일상 속에 깃든 행복과 단정한 삶이 주는 기쁨을 솔직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전하는 책이다. 2018년 수도 회원이 되기로 맹세한 '수도서원' 50주년을 맞아 책에 더 특별한 의미를 담았다는 이해인 수녀와의 만남을 전한다.
 
 
2011년에 출간된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후 6년 만에 새롭게 펴낸 산문집이네요.
2009년에 항암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이후에 썼던 글들이 60편 정도 모였어요. 2018년은 수도서원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그 동안의 시간을 정리하고 기념하는 의미로 책으로 엮었죠.
기도시집 『사계절의 기도』 개정증보판도 곧 나올 거에요. 기존 책에 실렸던 150편에 150편을 더해서 300편의 시를 담았는데, 주제별, 계절별로 다양한 시들을 모았습니다..
 
날카롭고 까칠해지기 쉬운 시대에 수녀님의 산문들을 읽으면 마음이 순해지는 기분이에요. 글이 주는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좋아요.
누구나 마음 속에는 선한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어요. 저는 그냥 나 자신의 못남을 사랑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그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는 거죠. 어떤 분들은 제 글을 읽으면 좀 착해지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고요(웃음).
시는 아무래도 상징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어려워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산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서 더 반가워 해주시는 것 같아요. 저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부담없이 이야기하듯 글을 쓰려고 하고요.
 
수도서원 50주년을 기념해서 1968년 첫 서원 후 일 년간 썼던 일기들을 수록했는데요.
원래는 넣을 생각이 없었는데, 수녀는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것도 보여주고 수도 생활의 고뇌도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갑자기 출판사와 얘기해서 넣게 되었어요.
책에 넣으려고 예전 일기를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내가 쓴  글이지만 울컥하더라고요(웃음). 20대 초반의 젊은 수녀의 마음도 읽히고, 그래도 내가 초심을 지니고 살려고 몸부림쳤구나 하는 것도 구체적으로 다가오고요.
 
저도 읽으면서 50년 전의 초심이 최근에 쓴 산문들에서도 느껴져서 좀 놀랐어요. 또 하나 놀란 게 있다면, 50년 전에도 글을 잘 쓰셨더라고요(웃음).  
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했나 봐요. 저도 다른 사람들한테 내가 글을 잘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니라 수녀니까 사람들이 좋게 봐 줘서 그런 거라고 얘기하고 그랬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 돌이켜보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웃음).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썼거든요. 독후감이나 글짓기 숙제를 해가면 선생님한테 꾸지람 들었어요. 이건 네가 한 거 아니고 언니나 다른 사람이 해준 것 아니냐고. 조그만 아이 머리에 이런 생각이 들어있을 수가 없다고요(웃음).
글쓰기에는 재능도 좀 있었고, 노력도 했어요. 그리고 수도생활을 하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사색을 더 많이 하니까 그 영향도 있었죠.  
 
 
이번 산문집 제목이 좋았어요. 그냥 행복이 아니라 '기다리는' 행복이라서요.
제목은 예전에 제가  쓴 산문시의 제목이기도 해요. 우리의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잖아요. 그 속에서 행복이 있고요. 평범할 수도 있지만 괜찮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로 정하게 되었죠.
 
일상에서 ''의 중요함을 이야기한 글들이 눈에 띄었어요. 요즘은 한 번 뱉은 말이 너무 빨리, 또 너무 멀리 퍼져나가잖아요. 그런데도 말을 신경써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막상 뭔가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부적절한 말을 하기도 하는데, 수녀님의 '일상 언어 도움 메뉴판'은 정말 큰 도움이 되겠어요.
말이란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라서 꼭 이렇게 말하라는 건 아니고,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사례를 보여준 거죠. 이걸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을까 싶어서요.
고운 말이라는 건 미사여구를 쓴 화려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꼬이지 않은 많이에요. 말 때문에 많이들 싸우잖아요.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을 해보자, 그냥 고운 말을 쓰자고 하는 것보다는 샘플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서 쓴 글인데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웃음).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약 먹을 때 하는 기도'에 대한 내용 읽으면서, 아 이런 것도 기도가 될 수 있고 글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있었어요.
몸이 좀 살만해지니까 약 먹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선배 수녀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분은 나보다 세 배 정도 많은 분량의 양을 먹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약통을 하나 구해서 약 먹을 때 하는 기도를 붙여서 선배 수녀님께 드리고, 나도 기도를 하자 생각했죠.
사실 몸에 좋으라고 약을 먹는 건데 우리는 좋은 마음으로 먹지 않고 불평하면서 먹잖아요. 그래서 약을 먹을 때도 거룩한 예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구나 생각했죠. , 나도 희망을 주는 약 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마음도 담고요.  
 
오랫동안 교류하는 독자분들도 많으신데요. 기억나는 독자분들 혹시 있으신가요?
독자들이 보낸 편지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한 고등학생이, 수녀님 글을 읽다보면 한 집에 살다 먼 기숙사로 떠난 언니가 보낸 편지를 읽는 기분이라고 했어요. 그 만큼 정겨운 느낌을 받았다는 건데, 그 구절이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또 어떤 분이 '사랑하는 국민 이모 수녀님'이라서 써서 보내주셨는데, 그것도 너무 좋았어요. 국민 이모. 엄마한테는 못할 부끄러운 이야기를 고백할 수 있고 또 그걸 들어주는 이모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죠(웃음)..
 
또 책에서도 썼던, 초등학생 어린이들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어요. 오늘도 만나기로 했는데(웃음). 아이들은 계속 성장하는데 그 추억의 길목에 제가 있다는 게 기쁨이죠. 어린이들에게는 감탄하기도 하고 신선한 느낌도 받고 또 그리움도 생기는 것 같아요.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어린이들을 기쁘게해 줄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독자들과 계속 소통하고 교류하는 일이 수녀님 건강에 무리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인데요.
몸이 아픈 분들이 세상 떠나기 전에 나를 한 번 만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내가 힘들어도 차마 거절을 못하겠더라고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도 결국 인간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러 오신 건데 우리가 인간에게 배타적이어서는 안되잖아요.
 
사랑조차도 너무 이기적으로 하는 시대지만,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가르치고 훈계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래 힘들지?라고 말 한 마디 해주는 이모, 고모 같은 역할은 내가 할 수 있을테니까요.
 
싸인 하나를 해 줄 때도 기도를 담아서,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수도생활 반세기가 제게 선물한 것이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다 연결되어 있는, 일가친척이라는 깨달음이죠.
 
책 뒷부분에 보통은 유명한 분들의 추천사가 들어가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특별히 해인글방 방명록에 남겨진 글 중에서 발췌했어요. 그래서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았어요. 박완서 작가님이 남긴 방명록 글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박완서 작가님도 부산 해인글방에 오셨었군요.
2009 10월이면 박완서 작가님도 암투병 중이었을 거에요. 돌아가시기 1년 정도 전이네요. 해인 수녀님을 여러번 위로를 했지만 막상 내가 암에 걸려보니까 해인 수녀님을 건성으로 위로한 것 같다고,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아팠겠냐고, 부산에 와서 도미조림 정식이라도 사주고 다시 위로해주고 싶다고 하셔서 두 번인가 오셨었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려요.
한 순간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사물을 읽고 순간순간 상황을 읽고 관계 안에서 사람의 뜻을 읽는 것, 이 모든 것이 '읽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잘 읽고 잘 해석하는 사람이 되려면 지혜를 키워야 하는데, 그 지혜는 우리보다 앞서간 선인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고요.
 
요즘은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른 시대잖아요. 그럴수록 내면에 우물을 하나 깊게 파서 언제라도 그 안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 있는 그런 독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매일은 아니라도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고 정리하고, 마음을 가꾸려는 노력을 하면 삶이 충만해지지 않을까요. 너무 바쁘고 그래서 깊이 못 들어가고 피상적으로 지나가는 것이 많지만 그럴수록 잠시 멈춰서서 나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세요. 부족한 것이 많은 나지만, 그런 자신의 부족함도 인내하면서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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