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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고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람을 만드는 사람』 마윤제

  • 201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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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끝자락에 위치한의 광활한 고원 지대 파타고니아.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황량한 이 땅은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양을 풀어놓고 키우기에 좋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에서 떨어져나온 사람들은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양을 치는 가우초가 되었다. 수 만년 전부터 변함이 없었을 것 같은 황량한 풍경, 미친듯 불어오는 바람, 사람보다 양이 더 많은 고립된 환경, 과거에 대해서 입을 다무는 거친 남자들. 작가와 사진작가, 그리고 여행자들이 파타고니아로 홀린 듯 이끌리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아득함 때문이 아닐까.
 
『검은 개들의 왕』으로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마윤제 작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쓴 『바람을 만드는 사람』은 파타고니아의 늙은 가우초 네레오 코르소가 바람을 만드는 존재인 '웨나'를 찾아 떠돈 한평생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대체 어쩌자고 지구 반대편의 낯선 공간에서 펼쳐지는, 한국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을 쓴 것일까?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파타고니아의 늙은 가우초가 주인공입니다. 작가 이름을 가리고 읽으면 한국 소설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겠던데요.
출판사에서 외주 교정을 맡겼는데, 교정하는 분이 번역서인줄 알고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람 사는 건 동양이든 서양이든 다 똑같거든요. 삶의 보편성이라는 건 지구상 어디를 가든 통하니까요.  
 
한국 소설의 전반적인 경향에서 많이 벗어난 분위기라는 뜻이기도 한데요.  
쓰면서 중간중간 회의가 많았어요. 이 이야기를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국 소설들은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 현실적인 시공간적 감각을 중심으로 하는 소설 문법에 굉장히 익숙해요. 그런데 내가 쓰는 이야기는 공간적으로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몇 만년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 이 이야기를 독자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이 되었죠.
 
처음 『바람을 만드는 사람』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2002년에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GEO』라는 잡지를 보게 되었어요. 거기에 독일 슈피겔지 기자가 쓴  르포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죠.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양을 키우는 가우초를 취재한 르포인데, 분량이 꽤 길었어요. 그 중에서 예순 여덟 살의 가우초 네레오 코르소의 사진에 눈이 갔죠. 가우초의 삶이란 굉장히 단순하고 또 고립되어 있어요. 그래서 가우초들 중에서는 술과 도박에 빠져서 거칠게 사는 사람도 많은데, 이 사람은 너무나 평화로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더라고요. 우리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고립감 속에서 사는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어떤 시간을 보내면서 살아갈까,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렇게 평화로운 표정을 지을까, 그런 궁금증이 상상력을 자극했죠.
 
첫 소설이 2012년에 나왔는데, 두 번째 책인 『바람을 만드는 사람』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렸네요.
처음에는 『노인과 바다』 정도의, 300~500매 정도의 짧은 이야기를 쓸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는 거예요(웃음). 네 번, 다섯 번 고칠 때까지는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건지 계속 헤맸어요. 그러다 일곱 번, 여덟 번 고치면서 비로소 소설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내가 추구하는 세계관이나 철학 같은 걸 소설에 넣을 수 있게 되면서 주제가 선명해지고 그때부터 소설이 되어갔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소설이 원래 어렵다고 하는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게다가 내 역량을 뛰어넘는 주제를 끌어안는 바람에 더 힘들었죠(웃음).
 
소설은 주정뱅이 아버지에 의해 농장에 팔려가 가우초가 된 여덟 살 소년 네레오 코르소가 바람을 만드는 존재인 웨나에 대한 전설을 듣고 평생 동안 웨나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바람'이라는 것이 중요한 메타포가 되는 것 같아요. 바람이란 것은 계속 불어오는 것이고, 또 계속 방향이 바뀐다는 점에서 정해진 운명과는 또 다른 것 같고요.
바람이란 건, 내가 도망간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바람만 맞을 수도 없어요. 명확하게 볼 수도 잡을 수도 없고요. 어떻게보면 인간의 숙명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죠. 인간이 늙어 죽어갈 때까지 갈구하며 찾아가야 하는, 그런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메타포, 삶에 대한 질문을 바람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설을 쓰면서 바람이 인간에게 주는 감각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감각을 알아야만 메타포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부는 사람을 한국에서 부는 바람과는 완전히 달라요. 그 바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서 새벽 2시에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가봤죠. 세상 천지가 어둡고 고요한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더라고요. 정상에서 1시간 정도 있어봤는데, 그렇게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내 기억 속에 넣었다가 그걸로 글을 썼죠.
 
 
 
파타고니아에는 직접 가보셨나요?
가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아는 분이 있어서 가보려고 했는데, 막상 그곳에 가면 소설적 상상력이 죽어버릴 것 같더라고요. 분명히 직접 가서 보면 내가 본 것들을 다 소설 속에 넣고 싶어질텐데, 그러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대신에 사진이나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참고했어요. 구글어스에서 찾은 파타고니아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고 아침에 한참을 들여다봐요. 그러면 사진 속 풍경이 서서히 내 몸으로 들어오고, 그러면서 주인공이 움직이고 글을 써나가는 방식이었죠. 최면을 걸듯이 계속 반복했어요. 나는 사진 속 풍경 속에 있다, 이런 최면을요(웃음).
 
그리고, 소설 속에서 네레오 코르소가 떠도는 여정의 동선이 어마어마해요. 지구 최남단의 도시 우수아이아부터 북쪽 볼리비아 국경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데, 아무리 취재를 한다고 해도 그 거리를 다 돌아볼 수는 없고 그렇다면 몇몇 중요한 장소만 보고 올텐데, 그러면 내가 본 것에만 상상력이 제한될수 밖에 없으니까요.
우리가 눈으로 보면 사진을 찍듯 명징한 모양, 형상, 단어를 얻으려고 하는데, 텍스트는 상상을 통해 만들어내고 또 텍스트를 읽는 사람 역시 그 시공간을 자기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거든요. 보이는 것을 그대로 쓰면 기록이지 상상이 아니니까요. 소설을 다 쓴 후에 가보려고 했는데, 이제는 가도 되겠죠(웃음).
 
소설은  네레오 코르소가 어린 시절부터 웨나를 찾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만남들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던데요.
우리는 나이를 먹기 때문에 성장하는게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을 해요.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상대방의 생각을 나의 것과  비춰보고 그러면서 성장하니까요. 어느 장소에 가서 무언가를 보는 것보다는 사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나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죠.  
 
네레오가 만나는 여러 인물 중에서, 청년 네레오가 도시에서 만나는 젊은 여자 아나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차가운 거리에서 태어나서 어떻게든 축복과 사랑을 움켜쥐려고 발버둥치지만 최종적으로 원했던 것이 부자들만 안장될 수 있다는 비싼 묘지의 한 구석 자리라는 것이 너무 아이러니하고요.
제가 만든 캐릭터지만 저도 아나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가장 슬프고 가장 아프고. 아나가 보여주는 것은 총체적인 인간의 욕망이거든요. 욕망의 끝을 짧은 시간에 다 보여주는 캐릭터죠. 특히 자기가 묻힐 묘지를 빚을 내서 미리 사 놓는다는 것이. 소설에 등장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콜레타 묘지는 실제로 비싸게 거래되는 곳이에요. 대통령과 귀족들, 저명한 예술가와 운동선수처럼 명망있는 사람들만 묻힐 수 있는 곳이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특별한 묘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나라는 인물을 가장 극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장치가 되더라고요.
 
네레오는 이후에 큰 목장의 가우초 감독관이 되고, 루이사와 결혼해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게 됩니다. 그런 삶에서 행복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것을 느껴요. 이게 행복이겠거니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삶이란 게 정말 이게 다인걸까? 하는 의구심이 있거든요.
유원지에서 멀리 있는 잔디를 보면 아름답고 멋진데, 가까이 가보면 풀이 엉켜있고 지저분하고 그렇잖아요. 사람이란 끝없이 좋은 잔디, 좋은 자리를 찾아나서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면 실망하죠.
보통 사람들의 삶 바깥에서 살아가던 네레오는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아이와 아내가 있는 이런 평범한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이죠.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고 
 
네레오는 그토록 찾아헤매던 웨나와 사막에서 잠시 조우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만남 이후에도 네레오는 계속해서 웨나를 찾아 헤매게 되요. 간절히 원하는 것에 닿아다고 느끼는 순간 오히려 더 공허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높은 산에 올라가도 정상에 서 있는 시간은 정말 짧아요. 그 다음에는 다시 긴 시간을 들여서 내려가야 하죠. 그게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그 짧은 성취는 인간이 끝없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인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소설에 담고 싶었어요.
 
 
 
네레오의 여정도 엄청나지만 네레오가 땅끝 우수아이아에서 듣는, 야흐간 족의 영웅 오칸 이야기까지 가면 남극까지 이야기의 배경이 확장됩니다. 엄청난 스케일인데요(웃음).
남들이 말도 안된다고 할 때, '왜 말이 안돼?' 그런 생각을 제가 잘 하는 것 같아요(웃음).
저도 처음에는 남극까지 이야기가 갈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어요.  남극을 누가 처음 발견했는가에 대한 여러 설 중에, 폴리네시아인 발견설이 있어요. 태평양의 섬에서, 바다 너머 저 먼 곳에 뭔가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한 사람이 누군가는 있었을 거예요. 또 누군가는 그곳에 가려고 도전을 했을 테고요. 기술적인 한계로 남극에 가 닿는 것은 실패했더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경계를 넘어간 사람들이 인류의 문명을 이끌어온 거죠. 지리상의 발견 뿐만 아니라 음악, 과학, 정치 그 모든 분야의 경계를 넘어 도전을 한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편안하게 살고 있는 것이고요. 『바람을 만드는 사람』은 그렇게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경계를 넘고 싶었지만 두려움과 여러 상황 때문에  그 길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어서 스스로 경계를 벗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저 역시 그랬어요. 남미의 늙은 가우초가 주인공인 소설? 대한민국의 어떤 작가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한 거잖아요. 처음에는 진짜 막막했는데, 점점 경계를 넘어서면서 제가 추구했던 목표에 도달한 거죠. 어떻게 보면 그렇게 경계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끝없이 영역을 확장해가는 것 같아요. 그것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아닐까 싶고요.
 
독자들도 책을 읽으면서 시공간적으로 상상의 폭을 넓혀보면 좋겠어요. 한국 소설이라고 꼭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잖아요. '한국소설'  경계를 확 넘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것 같고요.
시공간이 확장되면 생각할 여지도 더 많아지죠. 새로운 것들을 환기시키기도 하고요. 광활한 공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과연 어떤 존재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고요.
책을 읽은 젊은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책을 읽고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정도로도 만족해요. 소설이 해답을 줄 수는 없죠. 그저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소설가가 되기 전에 재즈바도 운영하고 인테리어 디자인 같은 다른 일을 하셨다고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고 있었나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고등학생 때부터 있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소설을 쓰지 못했죠. 이런 일도 해보고 저런 일도 해보고, 사업을 해서 돈도 벌어보고 실패도 해봤어요. 그런데 영 재미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궁극적인 충족감을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안에 갇혀있지 말고 내 경계 밖으로 한 번 나가보자, 5년만 소설 쓰기에 매진해보자, 안 되면 할 수 없고. 인생에서 5년 정도 없으면 어때, 그런 생각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죠.
 
역시 생각대로, 내 안의 갈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소설 쓰기였어요. 예전에 어떤 일을 했을 때도 느낄 수 없었던 희열,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죠. 물론, 과정이 힘들어요. 지금도 새 소설 집필에 들어가야 하는데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소설 쓰기를 시작하면 몇 년 동안 고생을 해야하니까 그 지옥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기 망설여지거든요(웃음). 그래도 역시 내가 살아있다는 의식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일은 소설쓰기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 이 가벼운 시대에 말도 안되게 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였어요. 하지만 이런 주제를 한 번 정도는 진지하게 대면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장대한 시공간 속에서 나를 한 번 반추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바람을 <!HS>만드는<!HE> 사람 [소설]  바람을 만드는 사람
마윤제 | 특별한서재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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