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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단지 진실을 원했고, 그 진실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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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한국을 방문했다.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처음 찾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알렉시예비치는 일명 '목소리 소설 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 부르는 독특한 장르의 글을 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논픽션 형식으로 쓰지만 그렇게 쓰여진 작품은 소설처럼 읽히며 강렬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200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차 대전이라는 참극 속에서 가장 작고 무력한 존재였던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마지막 목격자들』, 체르노빌을 경험한 사람들은 인터뷰한 『체르노빌의 목소리』, 소비에트 붕괴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세컨드핸드 타임』 등 묵직한 주제를 끈질기게 취재해 연약한 목소리들을 복원하고 전달하는 그의 책들은 장르를 넘어선 감동과 여운을 느끼게 한다
 
이번에 한국에 출간된 『아연 소년들』은 작가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아연 소년들』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자와 전사자의 어머니들을 인터뷰해 쓴 책이다. 책의 제목인 '아연 소년들'은 전쟁에 참전한 소년병들의 유해가 아연으로 만든 관에 담겨 돌아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책에서는 평범한 어린 소년들이 전쟁을 통해서 어떻게 망가졌는지, 그리고 그 전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살아서 혹은 아연관에 담겨 돌아온 소년의 어머니들의 절규와 아픔이 생생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책이 출간된 3년 후, 알렉시예비치는 새로운 전쟁이 휩싸이게 된다. 알렉시예비치와 인터뷰를 했던 아프간 전쟁 참전 군인과 유가족들로부터 돌연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 것이다. 결국 모욕적이고 지난한 법정 공방 끝에 재판은 종결되지만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과 치열한 투쟁들은 『아연 소년들』 개정판 뒷부분에 실려서 또 다른 의미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지난 5 19() 에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 주요 작품을 낭독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러시아 문학전공자이자 서평가인 '로쟈' 이현우 씨가 진행을 맡았는데, 짧은 질문 하나에도 깊고 진지한 대답을 들려주는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낭독회에서 있었던 작가와의 대화 주요 내용을 전한다
 
 
먼저 한국의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나라별로 내 책에 대해서 다른 반응을 보인다. 나라마다 다른 역사가 있고 멘탈리티가 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지난 40년 간 공산주의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백과사전적으로 써오는데 매진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알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라는 이념 자체가 굉장히 오랫동안 사람들을 좌지우지했고, 소련 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놀랐던 것은, 스탈린 시대 시베리아나 이르쿠츠크 같은 곳에는 엄청나게 많은 수용소가 있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의 뼈가 그 땅을 뒤덮었는데도 현지 대학교 기숙사에서는 학생들이 여전히 마르크스 서적을 읽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괜한 일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도 사람들의 고통을 전하는데 있어서 나의 힘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나의 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역사란 반복될 수 있으니까.  
 
첫 작품부터 일반적인 픽션과는 다른 형식으로 써냈다. 초문학, super-literature라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의 증언을 청취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현실에서는 매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에 참여한 사람들은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소박하고 작은 사람들이다. 예전의 문학들은 영웅들을 조명했다. 장군이나 지휘관 같은 사람들을 주제로 했기에 작고 사소한 사람들은 조용히 잊히고 사라져갔다.
 
나의 부모님은 시골의 교사였다. 그래서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는데, 그 시절의 경험들이 대단히 흥미로웠다. 집 안에는 책들로 가득했고 그것도 좋았지만, 집 밖을 나서서 시골 사람들이 하는, 정제되지 않고 투박한 말들이 지닌 묘미들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대학 교육을 마치고 기자로 일을 하면서 말로써 사건을 전달받는 것이 더 흥미롭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활자를 낭독하거나 읽는 것보다 사람들로부터 말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그리고 삶이란 것 자체가 그 어떤 사고나 생각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공상이나 환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시대가 있고 어떤 사건이 있다면, 그 시대와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으 이야기를 조각처럼 모아서 하나의 사건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목소리 소설이 나오게 되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출간하면서, 내가 맞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출간된 『아연 소년들』에는 이 책과 관련된 법정 소송들에 대한 기록이 실려있다. 이 소송은 어떻게 시작된 것이었나?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한 어머니가 있었다. 남편은 없었고, 자신의 인생을 외아들에게 걸었지만 결국 그 아들은 아연관에 실려서 돌아온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를 인터뷰를 할 때 그는 울며 소리치며 자신의 이야기를 꼭 책으로 써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를 내가 고발당한 법정에서 만났다. 큰 충격이었다. 나는 당신이 쓰라고 했던대로 썼는데 왜 나를 고발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나는 내 아들이 살인자가 아니라 영웅으로 책에 쓰여질 줄 알았다고 하더라. 그런 대화 내용과 법정 진술들을 책의 뒷부분에 실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실제 경험한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져서 힘들었는데, 직접 그 증언을 듣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면서는 더욱 힘들었을 것 같다. 이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에서 고통 같은 것은 없는가?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냐고. 하지만 사실 내가 하는 일은 그렇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상대적으로 시련을 견뎌내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직업군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나 군인 같은 직업이 그렇다. 작가도 그런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하면서, 살해당한 많은 시신들을 보았고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더 잘 견딘 것도 아니었다. 타쉬켄트의 한 병실에서 전쟁으로 팔다리가 절단된 젊은이들을 만났다. 불구가 된 몸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환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젊었고 눈은 아름다웠다. 그런 사람들을 앞에서 내가 힘들고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벨라루스나 러시아의 현재 권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권력의 탄압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지?
내가 이런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이유는 특별히 재난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내가 슈퍼맨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진실을 원했고 그 진실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그 길이 절대 쉬운 길은 아니었다. 인간의 끝없는 고통을 이야기해야 하는데다 이 고통은 반복되기까지 하니까.
 
하지만 나에게 개인적으로 더 힘겨운 것은, 우리가 이토록 많은 고통을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고통이 자유로 바뀌지 않는가다. 왜 러시아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사랑하지 않고 푸틴을 영웅으로 받들고 있을까? 『세컨드핸드 타임』에서는 소련 붕괴 후에 쓴 책인데, 책을 쓰면서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소박하고 민주적인 삶과 위대하지만 고통스러운 삶이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 그때 90% 이상의 사람들이 후자의 삶을 택했다. 아마 책을 보면서도 믿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오랫동안 수용소 같은 공산주의 사회에 적응하다보니 자유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90년대에 사람들은, 이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대두되었으니 내일이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가 말했던 것처럼, 공산주의라는 괴물과 싸워서 이겼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들쥐들이 가득했다. 혼란기를 틈타 부와 권력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세력들 말이다. 이제 알게 된 것은, 앞으로 가야할 길은 한참 멀다는 것이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거의 10년 동안 썼다고 했는데, 책을 쓰는데 오래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체르노빌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능력을 추월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소개된 체르노빌의 방사능 오염 지역에는, 사람이 떠난 자리를 자연이 채우고 있다. 수목이 집을 덮고, 동물들이 폐허를 뛰어논다. 아마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은 인간의 모습을 더욱 지워갈 것이고, 30년 후면 이 지역에서 인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체르노빌 사태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제왕이라는 철학에 종지부를 찍었다체르노빌에 대해 쓰면서 책의 주제를 안티 사이언스, 안티 러시아로 잡았다면 금방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책에 철학적인 함의와 수수께끼를 담고 싶었기 때문에 집필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박수진 (교보문고 북뉴스)
사진제공_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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