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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홍어』, 함박눈이 내리던 어린 날들의 추억

  • 등록일2010.07.30
  • 조회 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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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한민국은 ‘잘나갔다’ 그런데 1997년으로 접어들면서 ‘위대한 대한민국’은 추락의 길을 걸었다. 좌절은 없을 것 같았는데, 항상 희망만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았는데, 발전만 있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왔다. 대기업은 연쇄부도를 맞고, 사람들은 감원바람에 목을 움츠려야 했다. 1997 8 800원대였던 환율은 그 해 12 24 1달러당 1964.80원이나 되었다. 1997년은 그렇게 저물었다. 그리고 1998년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암울했다. 그때 『홍어』(문이당)가 나타났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 『홍어』

 

 

『홍어』는 1998 2월에 출간됐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섰다. 1998년 2월 15 『홍어』 초판 1쇄를 발행한 출판사 문이당은 두 달 만인 4 25 12쇄를 찍어야 할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김주영 작가의 『홍어』가 왜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10년이 넘으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새삼스럽게 『홍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김주영 작가는 좀 새삼스럽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발표한 작품을 일흔한 살이 되어 돌아본다는 행위는 세월의 책갈피를 슬쩍 들춰보는 무상함이 아니겠는가.

 

 

김주영 작가는 『홍어』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읍내 거리에 대한 생생한 묘사다.

“어머니는 몇 번의 내왕에서 익숙해진 길인 듯, 건어물가게 앞에서 왼편으로 돌아가는 넓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 골목 오른편 막바지에 방마다 남포등으로 환하게 불을 밝힌 집이 바라보였다. 놀랍게도 춘일옥이었다.

 

 

김주영 작가의 고향은 청송이다. 소설의 배경 역시 청송군 진보읍이다. 서른 한 살에 데뷔해 서른 여섯 살이 되던 해부터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한 김주영 작가가 그때까지 생활한 곳도 바로 청송이었다.

“내가 몸소 체험한 일이나 조사를 철저히 하면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00%는 아니지만 『홍어』에서의 거리 모습은 사진 찍듯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데, 그게 내가 살던 우리 마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김주영 작가는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청송이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다시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다”면서 요즘도 청송은 시골이라고 말한다.

 

 

‘독자와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말은 소설 『홍어』가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키워드다. 홍어는 1인칭 소설이다. 1인칭 소설은 고백적이다. 김주영 작가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내 이야기를 하는데 제일 유리한 소설이 1인칭 소설”이라면서 “심리적 분석에 유리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저는 농촌 출신입니다.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농촌 출신이에요. 농촌 출신들은 농촌에서 경험하는 것을 공유하지요. 가난·농기구·주거생활·가족관계·한() 등 거의 동일한 역사를 갖고 있어서 작가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습니다.

 

 

 

성장소설의 기념비적 작품

 

 

이 소설이 소년의 성장소설이라는 점도 폭넓은 공감대 형성에 기여했다. 소설 속의 화자인 세영이는 열세 살을 지나 열네 살에 이른 소년이다. 열네 살이라면 어른의 세계에 호기심이 가득 차는 나이다. 하지만 “낳은 지 6일 된 강아지처럼 눈을 뜰 듯 뜰 듯하면서 뜨지 못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나이에 소년의 눈으로 성인을 보기 때문에 유치한 생각이 자주 드러나는데, 이런 경험은 일반 독자들도 그 전에 가졌던 것들이다.

 

 

『홍어』는 태백산 남쪽 막바지 기슭에 자리잡은 시골마을과 읍내가 배경이어서 농촌에 살았던 독자라면 당연히 향수에 젖어들 법한 소설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새벽이었다.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한들거리며 내려쌓이고 있었다. 날이 밝아올 무렵인데도, 방안은 여전히 따뜻했다. 눈이 내리는 날의 아침은 그래서 항상 늦잠을 잤다. 이불자락 저편으로, 잡힐 듯 말 듯한 어머니의 미동이 느껴졌다. 나 역시 어머니처럼 일찌감치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잔허리와 엉덩짝에 착 달라붙는 녹작지근한 온기의 미련 때문이었다. 나는 방바닥 위로 잔허리를 내리깐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중략) 문 밖으로 내리는 눈발은 우리들의 숨소리조차 차곡차곡 삼켜버리고 있는 듯했다.

 

 

눈 내린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 버둥대는 소설의 화자 세영이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바로 그날 아침 걸부새이가 부엌에 스며든 것을 발견한다. 어머니는 걸부새이에게 삼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한 식구로 맞이한다. 하지만 삼례는 이들의 곁을 떠났다가 읍내 술집의 작부가 되어 돌아온다.

 

 

‘홍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는 읍내 춘일옥 주인의 부인과 눈이 맞아 몇 년째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상태다. 열네 살의 세영이는 삼례에게 연정을 품은 채 어머니 몰래 만나다가 그만 그 사실을 들키고 만다. 어머니는 삼례에게 돈을 주며 읍내를 떠나게 한다.

 

 

한편 눈 내려 버스가 끊긴 날 아이를 업은 여자가 집에 와서는 아이를 두고 사라지는데 어머니는 이 아이가 남편의 소생임을 짐작하고 아이를 거둔다. 어머니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외삼촌이 아버지가 돌아올 수 있도록 춘일옥 주인과 화해한 며칠 후 아버지가 돌아오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내고 사라진다.

 

 

김주영 작가가 문학 강연이나 기타 세미나 등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남편이 왔는데 어머니는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집을 나가버린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김주영 작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머니는 삼례, 이웃집 사내, 삼례를 찾아온 남자를 통해 세상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는 생각하겠죠. 남편이란 뭐냐? 남편이 집에 왔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어머니는 거기서 허무를 느끼지요.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폐쇄적인 생활을 벗어나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출현 자체에서 더욱 동력을 받습니다.

 

 

 

 

공들인 소설은 독자가 알아

 

 

누구는 『홍어』가 지난날의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데, 일면 그 생각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홍어』는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치가 난맥상을 보이며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 IMF라는 쇠망치로 두들겨 맞은 90년대 후반 독자들에게 잊혀진 시절의 그리움 한 조각을 던져주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하지만 정작 『홍어』의 작가인 김주영 씨는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본인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진다.

“음, 향수라든지, IMF가 어떻게 이 책 판매와 연관되어 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나는 소설을 쓸 때 굉장히 공을 들입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오래 가지고 굴립니다. 어떤 작가는 1년 만에 더 심하게는 6개월 만에 소설 한 편을 써내는데 나는 능력이 모자라 그렇게 못합니다. 2, 3년 동안 계속 고칩니다. 그래서 지우기 좋으라고 연필로 공들여 씁니다. 데뷔 연도에 비해 책을 많이 써서 몸을 버렸지만 공들인 소설은 독자들이 외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컴퓨터 자판으로) 글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를 하는 세대가 갖는 글에 대한 겸허함이 아닐 수 없다.

 

 

작가에게 특별한 책과 교보문고

 

 

김주영 작가는 『객주』와 『천둥소리』를 같이 썼는데, 이 소설들을 다 끝내고 쓴 소설이 『홍어』다. 김주영 작가는 『객주』를 쓰고 쉬면서 한국 어머니의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객주』를 쓰는 동안 취재차 객지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원고도 여관에서 써서 신문사 지국에서 송고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했다.김주영 작가의 모친은 소설 쓰기를 극구 반대했다.

 

 

“소설 쓰는 건 쪽박 차는 일 아니냐면서 어머니는 글 쓰는 걸 극구 말리셨어요. 이를 외삼촌이 나서서 ‘누님 그러지 마세요. 주영이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출세를 하는 아이에요’하면서 어머니를 설득했어요. 그래서 제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지요. 외삼촌도 저의 후원자였지만 ‘왜 굶는 일을 하려느냐?’는 어머니의 말은 항상 저를 더 열심히 쓰게 했어요. 글 쓰는 게 굶는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드려야 했지요.

김주영 작가의 말을 듣다 보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마치 현실 속의 인물처럼 느껴진다.

 

 

김주영 작가에게 책은 ‘아내보다 더 좋은 반려자’다. “아내는 20년을 함께 살든 50년을 함께 살든 아무리 좋은 부부생활을 하더라도 갈등을 겪는데 책은 아무리 떠돌다 와도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런 김주영 작가에게 교보문고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김주영 작가는 “교보문고가 우리나라 독서문화 창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서 교보문고에 특별한 애정을 피력한다.

“서점 건물을 어떻게 땅값이 참으로 비싼 세종로에 내는가? 이건 보통 모험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모험이 성공했어요. 대단하지요.

 

| 이성수(시인, 전 출판저널 기자)

 

[소설] 홍어
김주영 | 문이당
2009.09.15


사람과 책 2010년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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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5636
  • 2010/07/3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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