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영역

현재 칼럼 모아보기 전체목록보기

[책이 사는 이상한 나라 14] 헌책방 VS 중고서점

  • 등록일2015.01.30
  • 조회 3385
트위터 페이스북

몇 년 전 기사 작성을 위해 수도권 일대의 헌책방들을 꽤나 여러 곳 답사한 적이 있다. 당시 서점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일종의 경쟁사인 헌책방을 답사한다는 것이 조금 멋쩍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헌책방에 대한 소개를 서브로 하는 컨셉으로 바꿨던 기억이 난다.
 
사실 당시에는 사라져가는 헌책방이 짤막한 기사로나마 환기되어(미미한 도움이겠지만) 그 명맥이 이어지길 바라는 애틋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내가 좋아하는 헌책방이 사라지는 것이 싫었고 취재 핑계로 헌책방들을 구경하고 싶었다. 헌책방의 느긋함과 안락함, 더구나 저렴하게 책을 구입해올 수 있다는 매력은 헌책방 좀 다녀본 사람이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애틋한 헌책방이 자본주의 경쟁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한 때 청계천 일대에만 200개가 넘던 헌책방은 이제 50여 개만 겨우 버티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헌책방 답사기 취재 이후 몇몇 헌책방이 문을 닫았는데 당시 헌책방에서 만난 인연들과 기억들 때문인지 헌책방은 언제나 더 큰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런 헌책방의 위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 변신이 자못 심상치 않다. 거대자본이 헌책방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한 온라인서점에서 헌책방을 공격적으로 운영하고 나섰고 뒤를 쫓아 몇몇 온라인 서점에서도 헌책방과 비슷한 형태의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중고서점의 운영을 위해 준비 중이다. 눈여겨볼 점은 이들이 영리하게 ‘헌’이란 형용사 대신 ‘중고’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헌’이란 형용사가 주는 느낌이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고보니 책을 뺀 거의 모든 물건이 ‘중고’ 라는 이름으로 다시 매매가 이뤄지는데 왜 책만 유독 헌책으로 불려왔는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이들 중고서점은 거대자본이 바탕이 된 만큼 깔끔함과 세련미를 뽐낸다. 기존의 헌책방이 갖고 있던 낡고 허름한 이미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책들은 분류체계에 맞춰 깔끔하게 정리 정돈 되어 있고, 헌책방 사장님의 노하우로 구입되던 헌책들은 이제 까다로운 검수과정을 거치고, 일정한 기준에 의해 책정된 가격기준표에 의해 매입된다. 덕분에 중고서점이 보유하는 책들은 신간과 다름없는 좋은 품질을 자랑한다. 이러니 기존의 헌책방은 중고서점과 경쟁이 될 수 없다.
 
이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야기했다. 몇몇 출판사들이 도서정가제 때문에 할인하지 못하던 책들을 중고인 것처럼 넘겨 덤핑해 파는 경우가 생기고, 또 팔리지 않아 재고로 쌓여 있는 새 책들 역시 중고서적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말 그대로 새 책 같은 중고서적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새 책을 파는 중고서점인 것이다. 시장질서가 흐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에 대해 다양한 대안들이 나오고 있고 중고서점들 역시 자구책을 고심 중에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중고서점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보문고 중고장터 담당 윤이씨에 따르면 최근 새롭게 시행된 도서정가제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의 할인율이 낮아져 보다 저렴하게 책을 구매를 위해 중고서점으로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11월 이후 교보문고 중고장터의 매출이 약 20% 올랐고 이후 다시 평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시행초기라 이런 매출 상승이 얼마나 지속될지 또는 어떻게 변화될지는 모르는 상황이지만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쉽다

사라져가는 헌책방이 중고서점이란 이름으로 다시금 활성화되는 것이 출판계에 있는 1인으로 반갑지만 솔직히 헌책방과 중고서점은 여전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란 느낌이 물론 부정적인 느낌을 갖지만 유독 책에 사용되면 그 느낌이 변화되는 것도 사실. 아날로그 감성이 더해진다고 할까? 오히려 헌책 대신 중고서적이라고 할 때 그 포근함 감성은 사라지고 단순한 책이 되고 만다. 헌책방은 역시 헌책방으로 불러야 그 느낌이 산다.
 
헌책방의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정돈되지 않은 듯 정돈된 책더미의 모습은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또 책이 상할까 조심하지 않고 손쉽게 꺼내 펼쳐 들고 읽어볼 수 있는 편안함도 있다. 헌책방을 찾는 이들 역시 여유로움이 몸에 벤 사람들이다. 헌책방 취재를 다닐 때 그곳을 찾은 이들은 헌책방을 찾는 이유에 대해 '그냥 책이 싸니까요', '내가 본 책을 다른 사람이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으니 좋잖아요', '그냥 한번 읽고 마는 건데 낡으면 어때요'라고 덤덤히 대답하곤 했다. 책을 소유하는 것으로 가치를 매기는 것이 아닌 읽고 즐기는 것에 더 큰 의미를 찾는 이들이기 때문이다.(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유로운 이들은 중고서점보다 왠지 헌책방을 더 애틋하게 여길 것도 같다.
 
헌책방 또는 중고서점이 출판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되는 것이 흥미롭지만 어찌되었든 잊혀진 책 혹은 잊혀질 책들이 다시금 새로운 이에게 팔리고 읽힐 수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반갑다. 허나 서점에서 일하며 새 책을 팔아도 모자란 시간에, 헌책의 따뜻함이나 이렇게 예찬하고 또 권하고 있으니 우리 회사는 어쩌지? 매출이라도 줄면 큰일이다. 그렇다고 헌책방에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저 책을 많이 사보라고 권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겠다. 새책도 사고 중고서적도 사고 헌책도 사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은 우리 사장님이 결코 읽지 않으셔야 할텐데 말이다. 다들 모르는 척 눈감아 주길 바란다. 
 
윤태진 (교보문고 북뉴스)
 

책이 사는 이상한 나라

책이 사는 이상한 나라
윤씨 아저씨의 야심찬 기획. 출판계에서 수년간 굴러오며 주워들은 갖가지 이야기를 가감없이 풀어낸다. 책이 사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이야기들을.
  • 퍼가기 인쇄 트위터 페이스북

칼럼 모아보기

최신기사 보기

전체목록보기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댓글등록

현재 0 / 4000 bytes (최대 한글 2000자, 영문 4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