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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꼴리 라이프] 9. 행복하지 않을 권리

  • 등록일2015.01.30
  • 조회 2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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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행복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우울증 치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처음 상담치료를 받았을 때 상담사가 던진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행복하세요?”
어머니 또래의 상담사는 잘 웃고 잘 공감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상담사를 만나 본 적이 없기에 그게 직업적인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군가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준다는 느낌은 좋았다. 물론 우리 두 사람이 해피엔딩을 맞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극적인 치료 효과를 얻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이유는 내게 있었다. 나는 상담사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다. 첫 질문에서부터 말문이 막히니 그 이후에도 쭉 답보 상태가 계속되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상담치료를 받았을 시점의 나는 행복과는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었다. 몇 억 년 전에 빛났던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과거의 영광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상태였다. 그 별빛이 현재의 것이 아니듯 행복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행복으로 자위하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그때쯤 나는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생각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행복하지 않다는 게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고 다녔다.
가장 인상적인 대답을 한 사람은 역시 아들 녀석이었다.
있잖아, 아침에 일어났는데 유치원에 안 가도 돼. 그래서 땡땡(아들은 텔레비전을 그렇게 부른다)을 마음껏 보는 거야. 초콜릿을 먹으면서. 그런 다음에 저녁에는 소고기를 먹는 거야.”
! 이 얼마나 단순하고 진실한 행복인가.
나는 아들의 대답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내 안에 존재했으니 이제는 모두 소진된 행복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춘기 시절, 나는 하루 종일 농구를 했는데 그때는 무작정 행복했다. 미래, 아니 내일에 대한 걱정 따위는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 3점슛을 몇 개 넣는가가 행복을 좌우했다. 멋진 더블 클런치와 노룩 패스도 마찬가지였다. 게임에서 이기면 행복은 배가 됐다. 아내와 데이트하던 시절 역시 원 없이 행복했다. 이 세상에 단 둘만이 존재하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아무 것도 걱정스럽지 않았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했던 시절은 무수히 많았다. 그것들은 수 억 광년을 달려온 별빛처럼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내 머릿속, 그리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다만 새로운 행복이 채워지지 않기에 그 빛을 잃어갈 뿐이었다.
 
나는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어쩌면 더 이상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우울증을 앓게 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는 행복의 이유가 됐던 것들이 아무런 감흥 없이 다가오는 마음의 석화가 우울증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꼭 행복해야만 하는 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구나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모두다 행복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껏 행복 강박에 걸린 사람이었다. 애써 행복하다고 믿어왔고 어느 자리에서나 서슴없이 행복하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그 모든 순간순간 마다 나는 정말로 행복했던 걸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아들 녀석의 행복론 대로라면 나는 행복을 가장한 채 살아 온 셈이었다. 즐거운 척, 행복한 척, 웃긴 척 연기를 하며 살아왔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실은 그게 내가 진짜 원했던 일이라는, 턱도 없는 자기 최면을 걸었다. 행복하다고 떠들고 다니면 진짜로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만 좀 하라고, 이제 거짓말은 제발 그치라고, 드디어 마음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래서 우울증에 걸렸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고 나서야 행복할 권리처럼 행복하지 않을 권리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복의 강박에 더 이상 시달릴 필요가 없다. 그 사실을 알자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꼭 불행한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삶, 먹고 마시고 싸고 울고 웃고 때로는 화도 내는 평범한 삶 또한 가치가 있다. 심심하고 무미건조해 보여도, 자랑할 거리는 아무 것도 없어도, 그런 삶들이 모여 일상이 되고 일생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많이 아프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러면 아빠는 어떨 때 행복해?”
아들이 되물었다.
아빠는 사실 이 이상한 병에 걸린 후 진짜로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행복한 척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런 연기는 그만뒀다고, 그렇게 대답하기도 싫었다.
진짜 행복이 뭔지 찾아보고 있어.”
대신에 나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 말은 반쯤은 맞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애써 행복하기보다 내 안에 차오르는 자연스러운 행복을 맛보고 싶었다. 아니, 아예 행복하지 않아도 좋았다. 적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로 죄책감을 갖지 않으면 그걸로 족했다.
난 파워레인저가 되는 게 꿈이야.”
아들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파워레인저?”
. 그게 되면 정말 훨씬 더 행복할 것 같아. 아빠도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 봐.”
아무렴, 꿈을 이룬다면 정말 행복하겠지. 나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딱 하나였다. 그건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가난한 소설가라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좋은 아빠. 아빠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그러면 행복할 것 같아?”
.”
그럼 아빠는 벌써 행복한 거네. 지금 좋은 아빠니까.”
아들의 고마운 말에 나는 조금 울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아들과 그 당시에는 백수였던 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땡땡을 실컷 봤다. 냉동고에 들어 있던 초콜릿을 우적우적 씹으며. 아들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나 역시 행복했다. 우리는 아주 가까이 앉아 있었고 손만 뻗으면 녀석의 보드라운 볼을 어루만질 수 있었기에. 행복하지 않을 권리를 깨닫는 순간, ‘오늘속에 숨어 있던 사소하고 소소한 행복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아들과의 그 한갓진 토요일 오전 한 때도 그런 행복들 중 하나였다.
 
 
밤의 <!HS>이야기꾼들<!HE> [소설]  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 네오북스
2014.08.22
 

전건우의 '멜랑꼴리 라이프'

전건우의 '멜랑꼴리 라이프'
대한민국의 장르 소설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요, 한 아들의 아빠이다. 그리고 2년째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초보' 환자이기도 하다. 회색빛 우울증의 세계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고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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