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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4호: 천사이면서 마녀였던 여인

  • 등록일2012.06.27
  • 조회 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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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간 에바 페론. 그녀가 일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되었을 때는 27살밖에 되지 않았다. 불과 5년 동안 그 자리에 있으면서 아르헨티나 역사에 너무나 깊은 발자국을 남긴 그녀는 민중의 천사라는 칭송과 함께 나라를 망가뜨린 마녀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친아버지는 부유했지만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였기 때문에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난 어머니와 살며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낸 에바 두아르테Eva Duarte라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미모에 다재다능한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연예계에 뛰어들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연예인으로서 한창 활동할 나이인 27세에 일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극적인 반전을 이루었다.
 
그녀는 내조에만 머무르지 않고 남편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 국정에 깊이 관여했고, 특히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대통령인 남편 후안 페론Juan Pero'n보다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한창 일할 나이인 33세에 암으로 요절해 많은 국민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이처럼 영화 속 주인공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간 여자가 뮤지컬 <에비타Evita>로 잘 알려진 에바 페론Eva Pero'n(1919~1952)이다.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커다란 국토를 가진 아르헨티나는 19세기 말부터 급속히 경제 발전을 이루었는데,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1913년 남미 최초로 지하철이 개통되었을 정도였다. 특히 구대륙이 연이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세계에 막대한 농산물을 공급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업과 3차 산업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아르헨티나는 세계 6대 경제 강국의 위치에까지 올라갔다.
 

1945년 당시 남편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의 모습. 1946년 대통령 선거에 남편 후안 페론이 출마하자 에바는 유세에 동행했고, 이때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결국 남편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했다.
  
만일 이 당시에 민주화가 뿌리를 내리고 성장을 계속했다면 오늘날 아르헨티나는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이은 군부의 정치 간섭과 이에 따른 혼란으로 아르헨티나는 추락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가 정점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페론 부부였다. 1943년 쿠데타에 가담해 정권의 핵심이 되어 부통령까지 오른 후안 페론은 당시 사별한 상태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젊고 미모가 출중한 에바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곧바로 1945년에 결혼했다. 194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남편 후안 페론을 따라 에바는 유세에 동행했고, 이때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결국 남편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하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맡은 직책은 없었지만, 에바는 거리낌 없이 권력을 행사했고 그녀의 대중적 인기를 잘 알고 있던 남편도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던 그녀는 노동자와 하층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데 앞장섰다. 물론 약자에 대한 배려는 원론적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고 당연히 고도의 복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하지만 이런 이상은 충분한 여건이 먼저 조성되어야 가능한 것이므로 생각만큼 쉽게 구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제작된 유명 애니메이션인〈엄마 찾아 3천리)(한국 제목은 〈엄마 찾아 3만리)) 19세기 말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가 돈을 벌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간 엄마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이처럼 20세기 중반까지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아르헨티나는 위정자들의 포풀리즘 정책 남발로 급속히 쇠락했다.
 
바로 여기서 후대에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게 된다. 현실을 벗어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동안 아르헨티나가 쌓아놓은 국부를 소모했던 것이다. 이른바 페로니즘 Peronism으로 불리는 대중 인기 정책을 남발했고,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급속히 쇠퇴해갔다. 자본가들을 경멸한 그녀는 이들로부터 강제적인 대규모 출연을 받아내어 자선사업에 쏟아 부었다. 이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고용과 세수가 줄어들었고 당연히 성장은 멈추었다. 그녀와 남편이 벌인 이런 극단적인 파퓰리즘Populism은 아르헨티나 민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지만, 결국 국가를 거덜 내는 데 최악의 일조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여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가서 노동을 했을 만큼 경제 강국이었던 나라가 불과 한 세대 만에 몰락하고 아직까지도 헤매고 있는 것을 보면, 지도자는 한순간의 인기와 영달보다는 국가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내다보고 올바른 정책을 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감정과 열정이 너무 앞서 나갔던 에바 페론은 이성적인 여걸은 아니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삼류배우로 전전하다가 극적으로 퍼스트레이디가 되고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영화 같은 짧은 삶을 살다간 에바 페론. 가난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을 편국민들의 성녀라는 평가와 함께 선심성 정책으로 국가 경제를 파탄 나게 한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는 인물.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는 뮤지컬 〈에비타〉에서 그녀가 죽기 전에 한 말인데, 그녀의 죽음 앞에서 아르헨티나 국민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역사/문화] 전쟁 그리고
남도현 | 플래닛미디어
2012.04.09
 

남도현의 '전쟁, 그리고 여자'

남도현의 '전쟁, 그리고 여자'
남도현은 성균관대 졸업후 대기업 등을 거친후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비지니스맨. 전쟁사에 대한 몇 권의 교양서를 낸 작가이며 전쟁사, 군사 관련 파워블로거. 전쟁과 전쟁사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해 전문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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