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영역

현재 칼럼 모아보기 전체목록보기

[윤씨 아저씨의 책상 엿보기 2편] 만화가 변기현, “저에게 책상은 전쟁터에요”

  • 등록일2012.05.03
  • 조회 11552
트위터 페이스북
어린 시절 한 때 나의 꿈은 만화가였다. 만화 잡지점프챔프를 창간호부터 모으고, 당시 만화책에 담긴 그림들을 베껴 그리며 만화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그림도 제법 그렸다고 자신한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이 넌 반드시 예대에 가야 한다며 날 설득했었다는 내 자랑을,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굳이 강조하고 싶다. 어쨌든 그만큼 만화는 나에게 애틋하다. 만약 그 시절 만화가의 길로 뛰어 들었다면 나 역시 이런 책상을 갖고 있을까? 오늘은 만화가의 책상을 찾았다.
 
오늘 만난 작가 역시 책상이 단출하다. 뭐가 없다. '책상' 칼럼이 점점 위태로워지는 기분이다. 왜 내가 찾아가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깔끔하고 단정한 성격들이란 말인가. 내가 상상하던 만화가의 책상은 여기저기 구겨진 종이와 지우개 가루가 지저분하게 널려있고, 곳곳에 잉크가 번져 더러운(?)  모습이야 하는데 달랑 컴퓨터가 다라니한숨 가득 나오게 만드는 이 책상의 주인은 카툰 <고양이 제트>, <로또 블루스>, <슴셋> 그리고 이번에 출간한 <원미동 사람들>의 주인공 변기현이다.
 

: 보통 만화가들의 책상이 이런가요? 상상과는 많이 다른데요
변기현 : 다 이렇지는 않아요. 다른 분들은 책상 위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어요저희 작업실이 유독 허술해요. 원래 모니터에 바로 그리는 작업판을 다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거의 종이에 손으로 그리는 일이 많아요. 사실 다음 작업은 컴퓨터로 하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손으로 하는게 더 편하더라고요. 비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손맛이 있어요.
: 여기 빨간색으로 그린 선들은 뭔가요?
변기현 : 일단 빨간색 펜으로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선을 입혀요. 그리고 컴퓨터로 옮겨서 빨간색 선을 다 없애는 거죠.
 

변기현 : 컴퓨터로 채색하는 1세대 작가인데. 어느새 아날로그가 되어가고 있네요.(웃음) 제가 처음 컴퓨터로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지금처럼 프로그램이 다양하지도 않았고 어떤 프로그램을 다뤄야 할지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는 다들 프로그램도 잘 다루고. 저는 포토샵으로 주로 작업을 해요.
 
그림만 잘 그린다고 만화가가 될 수 없는 세상이다. 이제는 하나만 잘해서는 명함도 못내민다. 뭐든지 다 잘해야 한다. 경쟁이 치열한 세상이니 참 먹고 살기 힘들다.
 

: 프로그램 다루는 실력이 무슨 웹 디자이너 수준입니다
변기현 : 만화작가들은 프로그램을 여러 가지 다뤄요. 아마 만화가들은 만화 말고 다른 분야에 가서도 성공할거에요. 웹에 연재하는 작가들은 심지어 3D 프로그램까지 다루고 하니깐요. 이제는 만화가들도 어떤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가 많이 중요해요. 또 만화하시던 분들이 일러스트 쪽으로 많이 가는데 만화가들은 효율적으로 빠른 시간에 많은 작업들을 하거든요. 그림도 간결하게 잘 그리고. 그래서 만화하던 사람들이 인정받는 편이에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집단이 만화에 미쳐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영상이나 디자인 판에 뛰어들기라도 하면 당장 내가 먹고 살 길이 사라질까 걱정이다. (참고로 본인은 영상을 만드는 일이 주업이다)
 
(만화 '원미동 사람들' 중에서)
 
: 이번에 양귀자 작가의 책 <원미동 사람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만화로 출간하셨습니다
변기현 : 원작이 유명한 게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담되는 작업이에요.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문학보다 만화가 약간 하위문화로 인식이 되는 게 있어요.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뭔가 그 만화가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화로 다시 그린다는 것은 하위 문화로 내려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시작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좀 했었어요.
 
하지만 적지 않은 원고료 때문에 작업을 결심했다는 그의 솔직한 대답. 변작가는 부끄러워했지만 적당한 대가나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안 하는 게 당연한거 아닌가? '난 돈 때문에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작품은 억지로 하지는 않겠어' 따위의 자존심은 요즘 같은 시대에 굶어 죽기 딱 좋은 생각.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게 내 철칙이다.
 
: 처음에 어떻게 섭외가 들어 온건가요?
변기현 : 출판사에서 양귀자 작가님과 협의가 끝나고 작가를 찾다가 제가 그린 그림 중에 소설 『완득이』 표지 그림이 있거든요. 그 그림을 보고 이 스타일로 그리면 재미있겠다 생각을 하셔서 저를 섭외를 하신 거죠. 마침 제가 큰 작업을 끝낸 상태여서 여유가 있었어요. 또 글을 읽어보니깐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하게 된 거죠.
: 원작을 보시니깐 어떻던가요?
변기현 : 책을 읽어보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점은 캐릭터들이 다양하다는 거였어요. 그려보고 싶더라고요. 책표지 작업을 많이 해서 출판사들이 캐릭터를 이미지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는 걸 잘 알거든요. 이 책 같은 경우는 많은 캐릭터들을 통으로 다 그려낼 수 있잖아요. 만화적으로 재미있게 작업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작가님의 그림체는 일반적인 카툰과는 다르게 굉장히 섬세합니다
변기현 : 제가 처음에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했던 만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어렸을 때 제가 봤던 만화가 둘리나 심슨 뭐 이런 간단한 그림체였으면 이렇게 안 그렸겠죠. 그런데 저는 <아키라>, <공각기동대> 이런 작품에 감명을 받고 작품을 시작하다 보니 이런 어려운 스타일이…(웃음) 단순히 그리는 것보다 자료를 찾는 게 더 어려워요. 그냥 머릿속에 있는 걸로는 한계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골목이나 여기 보이는 이삿짐 이런 것도 어떻게 뭘 그려야 할지 막막하니깐 자료를 많이 찾아야 해요.
 

: 쉽고 가볍게 봤는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네요
변기현 : 두 페이지 그리는데 하루 종일 걸리죠.
: 어떻게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셨나요?
변기현 : 어릴 때는 막연히 만화가에 대한 동경은 있었는데 제가 만화가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러다 고3때 진로선택을 하면서 대학을 만화과로 가게 되었고 결국 이렇게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연필깎이가 눈에 띈다. 초등학교 이후로는 거의 보지 못했던 물건이다. 이것처럼 자동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뭉툭해진 연필을 구멍에 넣고 돌려 깎을 때의 그 기분은 여전히 생생하다. 스륵스륵? 사각사각?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벌써 연필과는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시 천원만주면 살 수 있었던 샤프 덕분인데 이후 연필깎이는 사용한 적도, 본 기억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보다니. 호기심에 연필깎이를 살짝 열어보니 깎인 나무 가루들이 가득 담겨 있다. 역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 연필깎이 참 오랜만에 보네요
변기현 : 5년 정도 된 거에요. 선물 받은 건데.
 

: 연재도 하시고 책 작업도 하고 굉장히 바빠 보입니다
변기현 : . 어떻게 사는지 모를 정도로 바빠요. 취미가 없어요. 일만해요.(웃음) 일벌레 같기는 한데 일을 안 하면 불안해요. 만화작업을 안 하면 일러스트 작업을 하려고 해요. 지금도 어린이 책 삽화를 그리고 있어요. 이거 끝나면 연재준비하고.
윤 : 연애는 하시나요?
변기현 :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 사실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활동을 안 할 수가 없으니. 그게 문제에요.(웃음)
 

: 최근 즐겨보는 책이 있다면?
변기현 : 저는 주로 만화를 봐요.(웃음) 최근에는 <진격의 거인>, <아이엠 어 히어로> 그리고 제가 무척 좋아하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죽도 사무라이>를 읽고 있어요.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데 상상력들이 정말 대단해요. 정말 정말 추천 드려요.
: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변기현 : 만화가가 된 이유 중 하나가 너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더 치열한 거 같아요.(웃음) 앞으로는 제가 하고 싶었던, 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만화들을 하고 싶어요.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 쪽도 열심히 하고 싶고. 꿈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죠.(웃음) 너무 어려운 꿈인가?
 

: 작가님에게 책상이란?
변기현 : 전쟁터죠. 전쟁터. 밖에서 돌아다니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나 이런 것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책상에 앉으면 내가 하고 있는 일 그 세계 안에 파묻혀 버려요. 그러면 전쟁터에요.
: 업무량이 많아서?
변기현 : 경쟁이 치열해서 전쟁터로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어요. 또 원래 성격은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죠. 필요한 도구들이 간소화 되기를 항상 갈망하죠. 
그래서 작가님의 책상이 더 깔끔 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변기현 : 봐주면 감사한 거고 안 봐주면 할 수 없는 거죠. 재미있게 봐달라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혹시나 만화를 보게 되면 이름이 외우기 힘든데 이름만이라도 기억해주세요. 변기수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헷갈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만화가 변기현의 책상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가장 아쉬움이 남는 건 그의 웃음 소리를 들려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매우 매력적인 웃음 소리를 가지고 있다. 흐으으으하하하? 음... 작가의 웃음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지만 그래도 정 듣고 싶고 궁금한 독자나 팬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웃음 파일을 따로 저장해서 메일로 보내줄 용의도 있다. 물론 꼭 들어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며 설득해야 한다. 여하튼 만화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란 걸 느끼고, 만화가가 되지 않은 게 어쩌면 참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난 그저 만화를 보고 즐기는 걸로 대만족 하련다.
 
┃윤태진 (교보문고 북뉴스)
taejin107@kyobobook.co.kr, 트위터 @taejin107
 
[만화] 만화 원미동 사람들 세트
변기현 | 북스토리
2012.03.30
[만화] 원미동 사람들. 1
변기현 | 북스토리
2012.03.30
[만화] 원미동 사람들. 2
변기현 | 북스토리
2012.03.30

윤씨 아저씨의 책상 엿보기

윤씨 아저씨의 책상 엿보기
칼럼 헌책방 답사기를 쓰느라 한동안 열심히 돌아다니다 이제 새롭게 돌아다닐 곳을 찾은 윤씨. 돌아다니는걸 무척 좋아하지만 이제 나이 들어 조금씩 꺼려하는 중.
  • 퍼가기 인쇄 트위터 페이스북

칼럼 모아보기

최신기사 보기

전체목록보기

댓글을 남겨주세요 3

  • 댓글등록

현재 0 / 4000 bytes (최대 한글 2000자, 영문 4000자)

  • st**0242
  • 2012/05/10 14:08
  • to**cada
  • 2012/05/09 13:48
  • lu**ang21
  • 2012/05/05 20:4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