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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9. 방금 언니를 죽인 범인을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 등록일2020.05.14
  • 조회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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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신호가 케일 스트리트에 와서야 잡힌다.
“덴턴이란 사람, 신문해보셨나요?
“네. 키스 덴턴이죠.” 모레티가 말한다. 모레티는 나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경찰의 신문 내용은 기밀일 거라 생각했으니까. 한순간 그와 내가 나눈 대화는 누구의 귀로 들어갔을지 궁금해진다.
 
“그 사람, 금요일에 언니네 집에 있었대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언니분 이웃 중 한 명이 그 사람 밴을 봤어요. 그래서 우리도 토요일에 서에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그 사람, 왜 풀어준 거죠?
“구속 근거가 없으니까요. 우리 쪽 전문가가 지금도 그 사람 밴에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있어요. 그 사람도 이 지역을 떠나면 안 됩니다.
“그 사람 상처도 확인해보셨나요?” 언니에게는 방어흔이 있었고, 개도 경비업체에서 훈련받은 개였다. 그러니까 개가 언니를 보호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 남자가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남자 말이, 자기가 떠날 땐 언니분이 멀쩡히 살아 있었다고 해요.
“그 사람, 3시에서 4시 사이에 어디에 있었대요?
“쉬고 있었답니다.
“어디서요?
“연못가 자기 밴에서요. 그 전날 밤 키들링턴에서 일 때문에 밤을 샜다고 해요.
“누구 본 사람 있대요?
“우리도 증인들과 CCTV 영상으로 행적을 하나하나 확인 중입니다.
나한테 이 말을 해주면 모레티에게도 뭔가 이득이 있는 모양이다. 이것도 분명 어떤 수사 기법일 것이다. 지금 이 정보가 내 안에 있던 어떤 기억을 소환할 거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 언니가 연못가에서 애인들을 만났다거나 그 장소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낼지도 모른다고.
“그 남자가 산등성이에서 언니를 지켜보던 사람이었죠?
“노라, 나도 아직 몰라요. 실험실에서 결과가 오면 그땐 더 많은 걸 알 수 있겠지만.
 
중심가는 거의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고 쾌적해 보인다. 더 이상 아까 그 남자와 단둘이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려온다.
방금 언니를 죽인 범인을 만난 걸지도 모른다. 이 사실이 귓속에서 울린다. 몇 분이라도 어딘가 안전한 곳에 있고 싶다.
 
 
중심가를 지나는데 신문잡화 판매점에서 주인인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루이스 경사가 보인다. 그를 기다린다.
“저 사람이 용의자인가요?
“아뇨.
 
판매점에서 자일스 영감은 가로걸리는 것 없이 기차역을 훤히 볼 수 있다. 게다가 언니 말에 따르면 그 영감은 마을에 도는 소문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마을 그 어떤 가게보다 늦게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를 알고 있는 탓이다. 사람들은 그 영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영감은 질병, 임신, 이혼에 대해 안부를 묻는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리엄과 헤어진 것도 영감은 알고 있다. 5월에 신문과 생수 한 병을 사느라 가게에 머물렀던 2분이라는 시간 동안 영감은 내 입으로 그 일을 털어놓게 했었다.
나는 문짝 위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바라본다. 바람이 공원을 가로질러 주목을 통과하면서 우렁찬 바닷소리를 낸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자, 내가 다녔던 대학 근처인 에든버러의 바닷가에 있는 것만 같다.
 
“앤드루 힐리란 남자가 2년 전, 위틀리에서 십 대 소녀를 폭행했습니다.” 루이스가 말을 꺼낸다. “스네이스에서 10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죠. 언니분이 그 남자한테 교도소로 면회를 가도 되냐고 묻는 편지를 보냈더군요. 그가 와도 된다고 해서 3월에 다녀왔고요.
“그놈이 맞았나요?
“힐리는 언니가 폭행당했던 여름에 마약으로 형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외출을 했을 수도 있잖아요.
“거기는 A등급 교도소예요. 폭행당한 날 힐리는 식사 당번이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힐리가 나왔다면 교도소에 기록이 남았을 거예요.
“언니도 그걸 알고 있었나요?
“힐리 말이 레이첼에게 자기는 불가능했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레이첼이 힐리의 변호사한테도 얘기를 했는데, 그 변호사가 선고일을 확인해줬고요.
 
“언니가 그 남자 면회를 어디로 간 건데요?
“브리스틀 외곽에 있는 교도소로요.” 루이스 경사는 나 대신 당황한 표정이다. 언니가 나한테 같이 가서 차에서 기다려달라고 하지 않았다니. 심지어 그 남자한테 편지를 썼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니. “언니가 범인을 찾고 있다는 말을 노라에게 한 적이 혹시 있었나요?
“그만뒀다고 그랬어요. 그냥 다 잊고 싶다고.
물론 언니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언니한테 그만 단념하라고 재촉을 해왔으니, 어떤 면으로는 말다툼을 하기보다 거짓말을 하는 편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 말을 한 게 언제였죠?” 루이스 경사가 묻는다.
5년 전이요. 그 남자, 용의자인가요?
 
 
레이첼의 <!HS>죽음<!HE>으로부터 [소설]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 작가정신
2020.05.07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대프니 듀 모리에의 정서, 히치콕의 영화적 시선, 폴라 호킨스의 심리적 스릴감이 결합된 페미니즘 스릴러의 신예 플린 베리의 강렬한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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