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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10. 오스만 제국의 확장

  • 등록일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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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제국의 술탄이 3개 대륙의 지배권을 장악
 
9대 술탄 셀림 1(재위 1512~1520)는 아나톨리아 전역을 평정한 후 이란과 아랍 정복에 나섰다1514년에는 이란, 1517년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무너뜨렸고, 시리아와 이집트 일대 주요 지역을 지배했다.
이슬람교의 2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셀림1 세는 맘루크 왕조를 무너뜨린 후, 몽골인에게 정복당해 카이로로 도피한 아바스 왕조 칼리파의 자손에게 칼리파 지위를 넘겨받았다.
 
이후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수니파 지도자와 칼리파를 겸했다. 케말 파샤의 혁명으로 1922년 술탄, 1924년 칼리파의 지위가 폐지될 때까지 오스만제국은 술탄이 정치와 종교의 지배권을 모두 장악하며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26세에 제10대 술탄이 된 술레이만 1(재위 1520~1566)는 약 반세기 동안 재위하는 중에 13번의 원정에 나섰고 서로는 알제리, 동으로는 이라크, 북으로는 흑해 북안과 헝가리, 남으로는 이집트에 이르는 3개 대륙을 지배했다. 20여 민족의 6,000만 명을 아우르는 오스만제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중해 최고의 해적 바르바로사를 등용한 술레이만 1세는 해군 병력을 강화하고, 1538년 프레베자 해전에서 베네치아스페인의 연합 함대를 격파해서 흑해와 지중해를 투르크인의 내해로 바꿨다.
1529 12만 명의 오스만군은 빈 포위를 단행해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제국을 존망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당시 빈은 방위군 약 2만 명과 시민 의용군 1,000명으로 힘겹게 버텼다.
 

 
오스만제국의 지배 주체는 투르크인이 아닌 종교
 
술레이만 1세는 오스트리아를 공략하기 위해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동맹을 맺었는데, 프랑스 왕에게 보낸 서한에서 자신을 ‘술탄 중의 술탄, 군주 중의 군주, 지상의 군주에게 왕관을 하사하는 자, 지상에 드리운 신의 그림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입법자라 불리며 제국의 행정과 재정 기구를 정비하는 등 600년간 지속된 제국의 기반을 다졌다.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술레이만 l세의 모스크는 건축의 거장 미마르 시난(술레이만 1, 셀림 2, 무라트 3세를 섬긴 오스만제국의 건축가로 300개가 넘는 대형 건축 프로젝트 등을 완성했다)이 그의 명을 받고 지은 건축물이다.
 
오스만제국은 3개 대륙에 거주하는 신민 6,000만 명을 이슬람법으로 지배한 종교 제국이었다. 때문에 오스만제국의 광활한 지배 영역에서 투르크인은 어디까지나 인구 면에서는 소수 민족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투르크어를 할 줄 알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 모두 제국의 신민으로 인정했다.
 
오스만제국의 지배 주체는 투르크인이 아닌 종교였다. 이슬람교가 다양한 지역 출신의 신민을 통치하는 데 이용된 것이다. 또한 오스만제국은 기독교, 유태교 등 비이슬람교 신자에게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고, 종교 집단을 통치 단위로 이용했다(밀레트 제도).
 
술레이만 1세의 명으로 미마르 시난이 7년에 걸쳐 건축한 술레이마니에 모스크, 1976,
 터키 이스탄불, Jpbazard
 
중동과 <!HS>이슬람<!HE> 상식도감 [역사/문화]  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미야자키 마사카츠 | 이다미디어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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