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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8. 사하라 사막의 소금 무역

  • 등록일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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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을 남북으로 연결한 소금 무역
 
현재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에는 전체 인구의 약 30퍼센트에 해당하는 2 5,000만 명의 이슬람교도가 있다. 그 규모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속한 동남아시아와 맞먹을 정도이며, 현재도 활발한 포교 활동으로 신도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 지역에 거대 이슬람 세계가 형성된 것은 동남아시아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상인의 교역 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사하라 사막을 남북으로 연결해서 사하라 남쪽의 풍부한 금과 사하라 사막에서 채굴한 암염(巖鹽)을 거래하는 대규모 소금 무역이 성행하면서 사하라 남쪽이 이슬람화되었다. 사하라 남쪽의 이슬람화는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7세기에서 8세기에 걸친 대정복 운동에서 아랍인이 북아프리카 원주민 베르베르인을 정복한 이후, 서서히 이슬람화와 혼혈이 함께 진행되었다. 즉 북아프리카는 한 세기 동안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의 혼혈로 태어난 무어인에 의해 이슬람 세계로 편입된 것이다.
 
9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중반에 걸쳐 사막 부족이 갖고 있던 사하라 사막의 소금 교역권은 점차 베르베르인에게 넘어갔다.
금본위 제도를 채택한 이집트 파티마 왕조의 적극적인 장려로 사하라 사막에서 채굴한 암염을 서수단의 금 집적지 가오와 그 서쪽의 가나로 운반하는 소금 무역이 활발해진 것이다.

 
사하라 북쪽에서는 암염, , 장식품, 의류, 곡물, 도기류가 운송되었고, 사하라 남쪽에서는 금, 흑인 노예, 흑단, 상아 등을 가져와 거래되었다. 북아프리카 상인들의 활동과 함께 이슬람교가 사하라 남쪽으로 들어왔지만, 본격적인 이슬람화는 13세기 이후 이슬람의 소수 종파인 수피교(신비주의자)의 포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아랍어로 된 《코란》의 교리보다 마음가짐을 중시하는 수피교의 가르침은 아프리카인들 사이에 급속도로 파고들었다. 그 영향으로 사하라 남쪽의 이슬람교는 지금도 각지의 전통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슬람 상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던 서수단의 금 산출량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풍부했다. 금의 생산과 무역을 지배한 말리제국의 국왕 만사 무사(재위 1312~1337 또는 1307~1332)의 메카 순례가 그 사실을 입증한다. 1만 명에서 2만 명에 달하는 수행원을 이끌고, 낙타 100마리에 금을 싣고 메카로 향한 왕은 가는 곳마다 황금을 뿌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 양이 무려 10톤에 달해서 카이로의 금 가격이 한때 대폭락했을 정도라고 한다.
 
만사 무사가 황금 동전을 쥐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카탈루냐 지도, 1375, 프랑스 국립도서관
 
 
중동과 <!HS>이슬람<!HE> 상식도감 [역사/문화]  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미야자키 마사카츠 | 이다미디어
2020.03.23

한눈에 꿰뚫는 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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