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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7. 바그다드 건설

  • 등록일2020.03.23
  • 조회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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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50만 명의 바그다드는 세계 교역의 중심지
 
여기에서는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확대된 이슬람 상업권이 중동사와 세계사에 어떤 과정을 거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공간적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아바스 왕조의 제2대 칼리파 만수르는 대제국을 관리할 목적으로 이라크 남부 옛 사산 왕조의 수도 근처에 3중 성곽으로 둘러싸인 지름 2.3킬로미터 규모의 원형 요새 도시를 세웠다. 이슬람제국을 관리하는 통제센터를 외부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
주벽의 하단부가 두께 50.2미터, 높이 34.1미터인 원형 도시(통제센터) 내부에는 궁전, 칼리파 일족의 거처, 대형 모스크, 각종 관청이 있어서 칼리파와 관료, 4,000여 명의 병사가 거주했다. 세계 각지에서 막대한 세금이 들어오는 바그다드는 주변으로 상인, 기술자 등의 서민이 몰려들어 마침내 인구 150만 명의 거대 경제 도시를 이루었다.
 
아바스 왕조의 전성기인 제5대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재위 786~809) 시대의 바그다드는 《아라비안나이트》의 무대이기도 했다. 당시 전 세계에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는 최대의 도시로 성장해서 시내에는 모스크 6만 개, 하맘 3만여 개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바그다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중동 상업망의 중심이었고, 나아가 바닷길과 실크로드로도 연결되는 유라시아의 경제 중심부의 역할을 담당했다.
 
새로운 수도 바그다드는 페르시아어로 ‘신의 도시’라는 뜻인데, 정식 명칭은 아랍어로 마디나 아사람(평화로운 도시)이다. 그 이름에는 피에는 피로 맞서는 이슬람 교단 내부의 대립, 아랍인과 피정복민의 대립 시대를 끝내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당시 이라크는 원래 이란인의 세력권이었으나 군사력으로 정복한 아랍인이 지배 세력으로 가세했다. 아랍인과 이란인의 협조를 도모한 아바스 왕조 치세에서 수도는 두 개의 이름을 가졌던 것이다.
 
아바스 왕조는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각 도시를 밀접하게 연결해서 단번에 거대 상업권을 형성했다. 이슬람 도시는 모스크와 상설 시장 스쿠(페르시아어로 바자르)를 중심으로 세워졌고, 시장 근처에는 낙타 따위에 물건을 실어 수송하는 대상의 숙박 시설(카라반 사라이)이 만들어졌다.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각 도시의 시장과 연결된 이 거대 상업권은 아랍어를 공통어로 사용했고, 이슬람법을 공통 규범으로 삼았다.
 
 
중동과 <!HS>이슬람<!HE> 상식도감 [역사/문화]  중동과 이슬람 상식도감
미야자키 마사카츠 | 이다미디어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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