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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변주곡] 1.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

  • 등록일2020.03.04
  • 조회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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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r.V Lento lugubre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

 

“그러니까 말일세, 일단 사람을 한 명 죽여 봐.

“예?

청년은 순간적으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의아한 시선으로 맞은편에 앉은 텁수룩한 수염의 중년 남자를 쳐다보았다.

 

“편집장님,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자신이 맞게 들은 것인지 확인하려고 청년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되물었다.

“내 말은…… 등단하고 싶으면 말이야, 살인부터 하라는 거야.

중년 남자는 도넛 모양으로 담배 연기를 뿜으며, 무덤덤하게 아까 한 말을 반복했다.

 

노천카페에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 옆으로 색색의 풍선을 든 꼬마 두세 명이 달려갔다

어린아이의 즐거운 웃음소리와 일요일의 광장은 잘 어울렸다

그러나 청년은 지금 순식간에 낯선 세계에 뚝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는 중년 남자의 말에 너무 놀라서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 지금 저더러 살인을 하라고요?

 

청년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렇지, 한 사람만 죽여 봐. 

중년 남자는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면서 느리게 덧붙였다

“추리소설가가 되고 싶으면 사람을 죽여야 해.

“편집장님, 그러니까 ‘살인’이라는 건 이야기 속에서 그렇다는 거겠죠?

청년이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려 애썼다.

 

“당연히 아니지. 현실에서,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여야 해.

청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네 말이지.” 중년 남자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었다.

“자네 원고 말이야, 바로 그게 빠져 있다고. 구성이 탄탄하고 필력 있고 다 좋은데, 제일 중요한 ‘영혼’이 없어. 자네도 추리소설의 대가라고 불리는 작가들 작품은 많이 읽었을 것 아닌가? 예를 들어 C씨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그 『파란색 밀실의 마천루 살인 사건』을 쓴 C 작가님이요? 그 작품은 정말 걸작이죠! 10년 전에 처음 읽고 완전히 빠져버렸는걸요. C 작가님의 최근 작품은 평가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파란색 밀실의 마천루 살인 사건』은 그야말로 ‘고전’입니다.

“그 작품의 트릭이 너무 허황되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어…… 약간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요.

청년은 중년 남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말실수를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파란색 밀실의 마천루 살인 사건』은 바로 중년 남자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허황되기 짝이 없어! 황당무계하다고!” 중년 남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반감을 갖지 않아. 평론가들은 90점 이상을 줬고, 판매량도 신기록을 세웠거든. 이 책이 왜 그렇게 잘 팔렸는지 알겠어?

“그건…… 영혼이 있어서요?

청년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바로 그거야! 영혼! C씨가 살인을 서술하고 시체를 묘사하는 장면에는 강렬한 현실감이 느껴져!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작품에다 영혼을 불어넣었는지 이해하겠나?

 

청년은 중년 남자의 말을 듣다가 호흡곤란을 느꼈다.

“편집장님, 그 말씀은…… 그러니까 C 작가님이…… 살인을?

“내 입으로 그렇게 말한 적은 없네.” 중년 남자는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C씨가 등단하고 나서 한 번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그…… 체포될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

“요즘 추리소설계에 얼굴 없는 작가가 늘었다는 생각은 안 드나? 이상하지 않아? K씨도 N씨도 ‘복면 작가’라는 타이틀로 활동하지. 문학상을 준다고 해도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은 M씨는 또 어떻고. 그 사람들도 다 C씨와 같은 이유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청년은 너무 놀라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 작가들이 전부…… 살인을 했다는 겁니까?

“흐흐흐, 정확한 숫자를 말하면 나처럼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은 사람도 깜짝 놀랄 정도야. 추리소설계에서는 불문율이나 다름없어. 잘나가는 추리소설가가 되려면 두 가지 방법뿐이야. R씨나 Q씨처럼 현실 속의 강력범죄를 해결하고 범인을 찾아내거나, 정체를 숨기고 살인을 경험하거나.

 

Q 작가님이 쓴 소설 속 범죄는 전부 실화예요?

청년이 물었다.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이 방법이 잘 안 통해.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이 점점 발달하는데 민간인이 무슨 수로 경찰보다 빨리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겠어? 게다가 갈수록 강력범죄가 줄어들어서 실제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가가 되기엔 확률이 너무 낮아. 최근 등단하는 신인 작가들은 대부분 두 번째 방법을 쓴다네.

 

청년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놀랍고도 두려운 사실을 갑자기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있었던 살인 사건 기억나?

중년 남자가 돌연 질문을 던졌다.

“작년 크리스마스요? 학교 선생님이 이웃집 여자를 죽이고 일주일 뒤에 체포된 그 사건 말씀이십니까?

“맞아, 그 사건. 그 남자가 이웃집 여자를 왜 죽였는지 아나?

“신문에서는 여자 쪽에서 구애를 받아주지 않아서 죽였다고…….

청년은 말을 하다 말고 자기 입을 턱 막았다. 중년 남자가 이 사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난 그 학교 선생이 쓴 원고를 읽었어.

중년 남자가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그래서……! 추리소설가가 되려고……. 세상에…….

 

중년 남자는 담배를 눌러 끄며 말했다.

“창작을 위해 살인을 한다니, 누가 그런 범행 동기를 믿어주겠나? 언론이든 경찰이든 자기들이 생각할 때 말이 되는 동기만 찾을 뿐이야. 그래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보고서도 쉽게 통과되니까. 요즘 시대는 말이지, 아무도 ‘진실’에는 관심 없어. 결국 그 학교 선생은 최종심 판결을 받기도 전에 감옥에서 자살했어. 어쩌겠나, 자기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을. 작품처럼 작가 본인도 미숙하더군. 자네 원고가 그 선생 것보다 훨씬 뛰어나.

청년은 칭찬을 받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가 제시한 조건을 떠올리자 또다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편집장님, 살……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내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분명히 말해주지.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자네는 평생 이류 소설가야. 

중년 남자는 다른 담배를 다시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내 눈은 틀린 적이 없어. 우리 출판사에 얼마나 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포진하고 있는지 자네도 알 거야.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중 절반은 내가 발굴한 작가지. 자네는 잠재력이 있어서 그런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낄 만한 능력이 있단 말이야. S씨 기억하나? 등단 첫해에 우리 회사에서 엄청나게 투자했던 작가지. 지금 그 사람 소설이 영화로 제작되고, 12개 나라에 번역 판권이 팔렸어. 난 자네한테 S씨 같은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청년의 마음이 흔들렸다. 탁자 위에 놓인 명함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실력이 좋다고 알려진 다국적 출판사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그 아래에 ‘문예출판 4팀’, ‘부편집장’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사실 청년은 한번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출판사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직급이 높은 사람과 바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자네,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를 향해 문제를 내고 싶은 적이 한 번도 없었나? 세상 사람들에게 도전하는 거지. 본인이 설계한 트릭에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것 아니야? 자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지 않아?

중년 남자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조그만 불씨 하나가 청년의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불씨는 점점 커지고 강해졌다.

 

“제, 제가 정말로…… 살인을 한다면 누구를 죽여야 하죠?”청년이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중년 남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건 자네 문제야, 내 문제가 아니라.

청년은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웃집 여자를 노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라는 것뿐이야.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골라잡으라고. 그리고 하나 더, 나는 노리지 말게. 내가 죽으면 자네 책을 내줄 사람도 없어지는 거니까.

중년 남자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청년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묵묵히 창작의 길을 걷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꿈에서라도 잡고 싶은 기회가 눈앞에 있다. 그가 원한다면, 손을 뻗어 붙잡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는 살인을 했다가 경찰에 체포될 것이 두려웠다. 물론 자신이 설계한 트릭을 아무도 풀어내지 못할 거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살인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하다

솔직히 지금까지 현실에서 살인을 저지른다면 어떨까 수없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시도해보고 싶어서 안달하면서도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심리적 자물쇠에 묶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살인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는.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는 거 아나?

마음속에서 엎치락뒤치락 고민하던 청년은 갑자기 입을 연 중년 남자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남자와 여자요?

“당연히 아니지.” 중년 남자는 담배를 깊게 빨고 나서 말을 이었다.

 

 “타인을 이용하는 자와 타인에게 이용당하는 자야. 자넨 둘 중 어느 쪽이 되고 싶나?

 

 
디오게네스 <!HS>변주곡<!HE> [소설]  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 한스미디어
2020.02.19



디오게네스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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