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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1. 사랑에는 늘 어느 정도 광기가 있다

  • 등록일2019.08.22
  • 조회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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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어느 정도 광기가 있다.
그러나 광기에도 어느 정도 이성이 있다.
_ 프리드리히 니체
 
 
게르트루드는 테우가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게르트루드 곁에서 불편해했다. 실습실에 들어선 여학생들이 코를 막아 쥐었다.
남학생들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테우는 자신이 크게 들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금속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녀가 차분한 모습으로 누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르트루드.
 
 
창백한 불빛 아래서 시체는 갈색 가죽에 가까운 독특한 색조를 띠고 있다.
옆의 작은 트레이에는 심층 조사에 필요한 기구들이 놓여 있다.
끝이 구부러진 가위, 해부용 집게, 랫투스 겸자, 그리고 메스.
 
 
“대복재정맥大伏在靜脈은 무릎 안쪽에서 있습니다. 거기서 시작해 허벅지 앞부분으로 이어지죠.
테우가 말했다.
 
그는 게르트루드의 상피를 뒤집어 말라버린 근육이 노출되게 했다.
클립보드에 복잡하게 메모된 내용을 들여다보던 교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테우는 교수의 반응에 주눅 들지 않았다.
 
해부 실습실은 테우의 영역이었다.
여기저기 널린 들것들, 절개된 시체들,
유리병에 담긴 팔다리와 장기들.
 
모든 것이 테우에게 세상 어디서 맛볼 없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그는 포름알데히드와 장갑 손에 도구들과 테이블에 누워 있는 게르트루드의 냄새가 좋았다.
 
게르트루드와 함께할 때면 그의 상상력이 폭발했다.
세상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자신과 게르트루드만 남겨놓은 .
 

 
테우는 게르트루드를 처음 만난 순간 그녀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그녀의 몸에 살이 아직 멀쩡히 붙어 있었을 .
둘은 이번 학기에 급격히 가까워졌다.
 
테우는 강의마다 게르트루드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녀는 항상 그를 놀라게 했다.
테우는 그녀의 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위인 머리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몸뚱이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혹시 이름이 진짜 게르트루드는 아니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이름?
 
그녀는 게르트루드가 되었다.
메마른 피부, 날카로운 , 메마른 밀짚 입술.
다른 이름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비록 부패가 진행돼 인간의 외형을 잃은 상태였지만 테우는 게르트루드의 흉측한 눈알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엿보았다. 한때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을 여인의 눈에서.
 
테우는 아무도 보지 않을 눈과 대화를 나누었다.
게르트루드는 육칠십 대에 사망했을 것이다.
되지 않는 머리털과 음모가 그것을 말해준다.
테우는 상세한 조사를 통해 그녀의 두개골이 골절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는 게르트루드를 존경했다. 과한 장례식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기꺼이 젊은 의사들의 실습도구를 자처한 지성인이다. 어둠 속에 영영 갇히기보단 의학 발전에 헌신하는 낫잖아,라고 그녀는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생전 그녀의 서재는 수준 높은 문학 작품들로 채워져 있지 않았을까?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부터 모아온 레코드판들도. 다리 근육을 보아하니 소싯적에 춤도 췄을 같다.
어쩌면 매일 춤을 추러 다녔는지도 모른다.
 
 
 
시체들 대부분은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노숙자나 걸인들이었다.
죽는 것이 삶의 목표였던 사람들.
 
돈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그들에게는 번듯한 뼈와 근육과 장기가 있었다.
덕분에 죽어서라도 유용하게 쓰일 있었다. 게르트루드는 그들과 확실히 달랐다.
발로 거리를 떠돌고 손으로 구걸을 하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강도나 남편이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맞아 죽었을 없다.
게르트루드는 자연계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아주 특별한 이유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누가 감히 그녀를 죽일 용기를 있었겠는가.
바보라면 몰라도…….
 
문제는 세상이 바보들로 득실거린다는 사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금세 있다.
하얀 가운 차림의 바보, 클립보드를 바보, 거슬리는 고음으로 마치 게르트루드를 안다는 지껄여대는 바보.
 
 
 
"관절낭이 열려 있고, 섬유층이 뒤집혀서 대퇴골과 경골의 원위부와 근위부가 드러나 있습니다.
여학생의 설명에 테우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만약 게르트루드가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면 그녀 또한 폭소를 터뜨렸을 뻔하다.
게르트루드와 함께였다면 테우는 고급 와인을 나눠 마시며 온갖 것에 대해 신나게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함께 영화를 보며 마치 평론가라도 영상미와 세트와 의상에 대해 평가했을 것이다.
게르트루드는 그에게 인생에 대해 가르쳐줬을 것이고.
 
게르트루드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무례함이 테우를 거슬리게 했다.
언젠가 교수가 자리를 비웠을 방금 새된 목소리로 의학용어를 늘어놓던 여학생이 시체의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하며 킥킥댄 적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주변에 몰려들어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테우는 보복에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지만 게르트루드가 당한 모욕에 대해서는 복수하고 싶었다.
 
학교 차원에서 징계를 내리도록 조치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봤자 요식 행위에 그쳐 효과라고는 요만큼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여학생에게 포르말린을 쏟아붓는 상상을 적도 있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말라가는 자신의 피부를 지켜보는 그녀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테우가 가장 원하는 것은 그녀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고 창백한 그녀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
 
물론 테우는 이를 실행에 옮길 마음은 없었다.
그는 살인마가 아니니까.
괴물이 아니니까.
 
 
 
어릴 테우는 밤마다 바르르 떨리는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며 머릿속 생각을 해독하려 무던히 애썼다.
마치 괴물이 듯한 기분이었다.
테우는 평생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꾸역꾸역 살아만 왔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연신 그의 인생을 들락거렸고, 테우는 그들과 깊이 엮이지 않으려 매일 전쟁을 치러야 했다.
문제는 가식적으로라도 타인에게 호감이 있는 척해야 한다는 거였다.
가끔 불가피하게 애정 표현을 해야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테우는 자신의 연기가 자연스러울수록 사는 편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벨이 울리자 학생들이 실습실을 빠져나갔다.
이번 학년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테우는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어깨너머로 회색 건물을 돌아보며 게르트루드를 떠올렸다.
다시 보지 못할 그의 친구는 다른 시체들과 함께 공동묘지에 묻히게 것이다.
그녀와 함께하는 특별한 순간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그는 또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퍼펙트 <!HS>데이즈<!HE> [소설]  퍼펙트 데이즈
라파엘 몬테스 | 한스미디어
2019.08.07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
사랑에 빠진 사이코 패스, 트렁크 속 스녀와 여행을 떠나다! 브라질의 스티븐 킹이 선사하는 '퍼팩트'한 로맨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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