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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는 여자] 10. 그 미소가 오직 나만의 것일 줄 알았다

  • 등록일2019.08.08
  • 조회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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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차가운 유리창에 얼굴을 댄다. 눈이 침침해지더니 앞이 뿌예진다.
침대로 가고 싶다.
오늘 벤이 끌어당기면 그의 팔베개를 베고 누워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그의 따뜻한 숨결을 맘껏 느낄 것이다. 사실 그런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질식해 죽을 같아서.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제는 참을 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요샌 간절히 원하기까지 한다.
나는 눈을 감고 거의 매일 그러는 것처럼 벤과 내가 그레이엄과 대프니라고 상상해본다.
어둠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벤이 그레이엄처럼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적이 있다.
벤과 그레이엄, 둘은 각진 아래턱과 보조개, 초콜릿색 머리와 선명한 파란 눈이 닮았다.
 
차가 모퉁이를 돌아 근처에 이르자 따뜻한 온기가 온몸에 촤악 퍼진다.
뭔가 굉장히 만족스럽고 안정적인 느낌이다.
길목에 있으면 편안하다는 이젠 인정해야만 한다.
내가 여태껏 느꼈던 것보다 더욱 편안해졌다는 말이다.
 
벤과 내가 진짜라면 어땠을까? 가끔 궁금하긴 하다.
우리가 길거리나 마트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친구들이 주선한 소개팅으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소개팅 자리에서 우리 서로의 끌림을 인정하고 정말로 사귀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지금은 지금일 뿐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벤의 환상 속의 여자.
벤에게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주면 지금까지 힘들게 그려온 환상이 와장창 깨져버릴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는 이상 원하지 않겠지…….
 
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너그럽고 용서를 잘하며, 짜증날 정도로 낙천적이고 이해심이 많다.
그래도 그는 나를 이해할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생에 마지막으로 붙들었던 것을 잃을 것이다.
진심을 다해 사랑해준 사람과 그레이스의 삶을 지켜볼 있는 VVIP석을.
 
 
 
5 : 대프니
 
차고에서 들리는 잔잔한 콧노래 소리가 밤잠을 깨운다.
옆에 있는 알람시계를 보니 9:52 PM’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레이엄이 2층으로 올라오기 전에 나는 다리에 덮여 있는 이불을 치우고 살금살금 욕실로 간다.
 
12 결혼식 전날 ,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았다.
절대로 편한 옷을 입고 있지 마라. 잠자리에 때도 화장을 해라. 머리를 유지해라.
침실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해라. 그래야 남편이 지겨워하지 않는다.
남편이 결혼식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을 잃지 마라. 그리고 속이지 마라…….
 

 
세면대 앞에서 짧고 굵은 야생 돼지털로 브러시로 머리의 컬을 다시 손질한다.
맑고 촉촉한 피부를 연출하기 위해 퍼프로 얼굴을 톡톡 두드리고 양치를 하고 모습을 훑어본다.
그리고 속옷과 맞춰 입은 새틴 소재의 나이트가운을 매만진다.
속옷과 나이트가운은 새것이다. 오늘 오후에 충동적으로 사버렸다.
그레이엄과 나는 3주째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기록이다.
보들보들한 카펫을 스윽 스치며 슬그머니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보니 그레이엄이 들어왔나 보다.
 
“나 여기 있어!” 내가 외친다.
화장실로 들어오라는 소리가 아니다.
시어머니가 일러준 부부간의 규칙에는 화장실에서 상대방에게 너무 편한 모습을 보이면 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한 후로 화장실 문닫기 정책을 펴고 있다.
 
“곧 나갈게. 가슴이 쿵쾅댄다.
그를 마주하기 전엔 그랬듯이.
욕실 문을 열고 나가니 번쩍이는 텔레비전 불빛이 벌거벗은 그레이엄의 가슴을 색색깔로 비추고 있다.
이불이 그의 허리께에 걸쳐져 있다.
그가 나를 보자 구릿빛 팔을 활짝 벌린다.
굉장히 멋지고 잘생긴 나의 남편이 보조개를 띠며 웃는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그가 항상 짓는 미소, 아직까지도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미소, 절대 질리지 않는 미소.
바보 같게도 기나긴 세월이 지나도 미소가 오직 나만의 것일 알았다…….
 
 
“늦게 들어왔네.
내가 가볍게 말한다.
날카로운 질책이 아니라 간단한 논평이나 하려는 것처럼.
 
나 같은 여자는 지구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어떤 여자가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알고도 아무렇지 않게 계속 사랑할 있을까?
어쩌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여자도 더러 있을 있다.
인생 전부가 남편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면 달리할 있는 선택이 없으니까.
아니면 내가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혼자만 이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애들이 아빠 보고 싶어 했어. 사람들은 강한 여자는 남자를 떠나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보다 강한 여자는 남자 곁에 끝까지 살아남아서 용감하게 싸우며 자기 것을 되찾는다고 말한다.
그레이엄이 이불을 들치자 나는 안으로 들어가 그의 팔을 베고 눕는다.
오늘 저녁 여자도 팔에 안겨 있었을까?
 

 
 
그레이엄은 볼에 입을 맞추고 눈부신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스포츠 하이라이트 방송을 본다.
 
“세바스찬이 잠잘 아빠가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대.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귀여운 . 그레이엄이 다른 정신이 팔린 채로 슬쩍 웃는다.
자기 아들을 침대까지 데려다 줄 기회를 놓쳤다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는 그렇듯 그의 목에 코를 비비며 사냥개처럼 킁킁 냄새를 맡는다.
그가 아침에 뿌린 샤워코롱 향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다른 향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하면서.
 
그레이엄은 오늘 여자와 함께 있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뜨린다.
지금 공간에 남편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약간 나아진 느끼면서 순간에 집중하려고 애쓴다.
 
 
그레이엄은 완벽하지 않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나의 전부다.
 
그렇기에 그를 용서할 있다. 그가 바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그를 잃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그레이엄과 나는 기가 막히게 멋진 삶을 함께 일구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로잡을 있다.
아니, 내가 우리의 삶을 바로잡을 있다.
그가 가진 것들과 우리의 아름다운 , 12 결혼생활, 아이, 이런 것들을 그에게 상기시켜줄 있다.
이것들이야말로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가치 있는 것이라고…….
 
그가 바라보고 있는 여자는 리스로 구입한 포르쉐와 다를 하나 없다.
손가락 걸고 서로 약속한 것도 없을뿐더러 흥미 역시 떨어질 것이다.
여자는 점심시간이나 돼야 겨우 그레이엄을 가질 있겠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중한 시간에 안락한 집에서 그레이엄과 함께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오늘 오랜 숙고 끝에 인스타페이스를 당분간 쉬기로 했다.
그레이엄은 내가 핸드폰에 박고 지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며 불만이었다.
그래서 가족에게 집중하고자 결심을 했다.
광고료로 달에 달러는 쉽게 있지만, 돈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싶지는 않다.
인스타페이스는 그냥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기록해놓으려는 작은 활동일 뿐이다.
 
“그레이스가 로즈의 머리를 잘라버렸어. 내가 불쑥 내뱉는다.
“진짜 끔찍해. 뒷머리는 짧고 옆은 길고. 앞머리 같은 것도 만들어 놨어. 그레이엄이 내게로 고개를 돌린다.
“어떻게? 당신은 그때 어딨었는데?
“세바스찬을 목욕시키고 있었지. 내가 한숨을 내쉰다.
“집에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겠군. 그레이엄이 팔을 풀고 손을 잡는다.
 

 
그가 미안해한다. 그는 미안해한다.
‘미안’이라는 단어는 그의 어휘사전에 존재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손이 많이 간다는 나도 알아. 당신이 전부 감당하길 바라진 않아. 머리는 다시 자라면 테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그걸로 다행이라 생각하자. 그때 내가 도와줬으면 좋았을 텐데.
눈물이 나올 지경이네.
전에 그는 혼자서 집안일과 육아를 한다는 보통 일이 아니란 알게 되었다.
 
그가 돌보미를 고용하면 나는 SNS 제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지?
그동안 팔로워 수가 매일 수십 명씩 늘어가더니 지금은 벌써 1 1 정도 된다.
그러자 몇몇 업체에서 스폰서를 자청하며 제품을 보내주기 시작했고, 나는 작은 취미를 통해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경력을 쌓을 있겠다고 생각했다.
 
 
 
훔쳐보는 <!HS>여자<!HE> [소설]  훔쳐보는 여자
민카 켄트 | 한스미디어
2019.06.24
 
 

훔쳐보는 여자

훔쳐보는 여자
자신의 딸을 입양한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딸의 행복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 드는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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