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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갑질고객] 8. 북카페 책을 자신의 책으로 착각한 철학도

  • 등록일2019.02.07
  • 조회 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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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처럼 책이 빼곡했던 카페는 시절 나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이른 아침,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 책냄새와 원두커피 향을 깊이 들이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몸을 녹이던 순간을 잊을 없다.
 
처음에 카페는 북카페가 아니었지만 사장이 아버지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북카페로 바꾸었다고 했다. 사장의 아버지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사장은 유품을 정리하면서도 서재를 정리할 없었던 모양이다.
“책들이 너무 깨끗해서 최소한 번씩은 읽고서 내다버리겠다고 결심했지.
사장은 책들을 자신이 운영하던 카페로 옮겨왔고 아마도 자신의 결심을 지키려면 카페를 평생 운영해야 같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사장은 처음 북카페로 바뀌었을 때만 해도 1~2주간 매출이 급증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이색 카페가 생겨나던 즈음 북카페는 이미 대단한 구경거리도 아니었다고 했다.
“사장님, 저희도 패션잡지라도 들여놔야 하는 아니에요? 손님이 너무 없어요.
손님이 뜸한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그나마 되는 단골손님은 한번 들어오면 서너 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뿐이었다. 혼자 4인석 자리를 차지하고 서너 시간 책에 빠져 있는 손님들이 나는 싫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은 좋아할 없었을 것이다.
 
어느 책장에 꽂힌 책을 들춰보던 사장이 말했다.
“이게 뭐야? 누가 이랬어?
사장이 손에 책은 두꺼운 철학서였다. 앙리 베르그송이 책은 젊은 학생들이라면 웬만해선 들춰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책이었다. 책을 대체 누가 펼쳐본 것인지 여기저기 십 수 페이지에 밑줄이 선명히 그어져 있었다. 자를 대고 힘주어 그어서 지워도 자국이 남을 같았다. 나는 주변에 꽂혀 있던 다른 철학서들도 꺼내 펼쳤다.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진한 연필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사장님 아버지가 하신 아닐까요?
“아니야. 우리 아버지는 밑줄은커녕 귀퉁이를 접는 것도 싫어하셨어. 책에 한해서는 결벽증이 있었거든.
사장이 소리로 말했다.
“이런 짓을 사람을 반드시 찾아내. 그리고 이곳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
사장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보았다. 누군가 아버지의 유품에 흠집을 것이 불쾌했으리라.
손님이 점점 줄어든 이유는 사장 아버지의 독서 취향과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북카페는 베스트셀러들을 구비해놓았는데 우리 북카페에는 철지난 책만 빼곡했다.
 
그날 나는 책장을 샅샅이 뒤져 밑줄이 그어진 책을 골라냈는데 무려 서른 권이 넘었다. 모두 철학서였다. 대체 누구일까. 남의 사업장에 놓인 책들을 자기 책처럼 더럽힌 사람이.
사실 머릿속에 벌써부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테리우스처럼 어깨까지 머리를 기른 청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은 매일 카페에 와서 대여섯 시간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공부를 했다. 독서가 아닌 ‘공부’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는 카페에 잠시 들른 다른 손님들처럼 가볍게 책을 읽는 같지 않았다. 그는 화장실에도 가지 않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전투적으로 책을 읽었다. 그는 가끔씩 눈치를 보며 가방에서 떡과 같은 주전부리를 꺼내먹었다. 청년이 풍기는 면학 분위기 때문에 수다를 떨려고 들어온 주부들도 빨리 자리를 뜨곤 했다. 카공족은 그때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나는 학생이 짜증이 났지만 측은하기도 했다. 잔의 커피로 대여섯 시간을 버티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철학서에 밑줄을 그었는지는 없었다. 나는 주문을 받느라 손님이 어떤 책을 읽는지까지 신경 여력이 없었다.
그림 조정화
 
다음날에도 그는 앉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는 이번에도 굵은 책을 꺼내 읽었는데 그의 나무 독서대에 가려져 책의 표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표지를 확인하려 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 때문에 다시 카운터로 돌아왔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았다. 다섯 잔의 음료를 만든 다음, 나는 손님들이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럼 그렇지, 그의 독서대에 놓인 책은 번역투로 쓰인 굵직한 철학서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책에 밑줄 그은 맞죠?
그는 당황한 같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다 같이 보는 책에 밑줄을 그으시면 어떡해요.
그는 헛기침을 다음 내게 되물었다.
“그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책들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들입니다. 책은 펼쳐봐야만 존재가치가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중요한 부분에만 밑줄을 그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의 내용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죠. 제가 밑줄 그은 부분만 읽어도 책의 요점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있어요. 수년이 지나 누군가 책을 펼쳐본다면.......
그는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같았다. 나는 인내심을 발휘해 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 다음 지우개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사정이 어찌 되었건 중에 하나를 선택하셔야겠어요. 책들을 모두 사서 가져가시거나 이곳에 앉아서 책에 그은 밑줄을 지워주세요.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지우개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밑줄을 지우기 시작했다. 시간에 걸쳐 밑줄을 지우던 그는 때때로 동작을 멈추고 팔을 위아래로 흔들거나 손목을 돌렸다. 그리고 창밖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쳐다보고 있자니 입에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매달 방문하는 독서모임 회원들의 주문을 처리한 뒤돌아봤다. 그는 이미 떠난 후였다. 인사조차 하지 않고 가다니. 그래도 그는 쓰레받기로 바닥에 떨어진 지우개 똥을 쓸어 담은 같았다. 책장 옆에 세워놓은 쓰레받기에 지우개 찌꺼기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나는 탁자 위에 높게 쌓인 서른 권의 책을 보며 그가 말을 곱씹었다. 책은 펼쳐봐야만 존재가치가 생기는 겁니다.
단골손님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서운했다. 나는 싱크대에 수북이 쌓인 컵을 씻으며 손님이 없는 그가 지우개로 지운 책들을 펼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깨끗해진 책들의 밑줄 자국을 찾아가며 책들의 요점을 파악해볼 요량이었다.
 
|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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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에서 일할 때 등단하고, 콜센터 이야기로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김의경 작가는 어머니의 사업 부도로 17살부터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어느 누구보다 갑질 고객을 많이 만나본 그녀가 들려주는 ‘내가 만난 갑질 고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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