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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갑질 고객] 4. 아들의 얼굴을 붉어지게 만든 아버지

  • 등록일2019.01.10
  • 조회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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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리는 100개의 프린트물을 복사하는 내게 커피를 타다 주며 말했다
“순서 틀리면 . 김선생 난리 난다.
김선생은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자였다. 오히려 실수는 웃고 넘어가는 편이었지만 복사와 같은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예민했다. 복사물을 100 만들라고 하면 반드시 100개를 만들어야지 개라도 모자라거나 넘치면 되었다. 페이지 순서가 하나라도 어긋나면 벼락같은 호통을 쳤다.
 
그해 봄과 여름, 나는 강남의 보습학원에서 사무보조로 일했다. 규모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학원은 원장의 수완으로 제법 운영이 되었다. 스타강사를 꿈꾼다는 김선생은 지역에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팬에 가까운 자신만의 충성스러운 학생들을 늘려가는 중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수업자료를 복사하고 과제를 걷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김선생의 완벽주의로 긴장된 상태에서 일을 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김선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명해져서 사무보조를 혼자서 하기에는 힘들 정도였다. 학생들이 빼곡히 교실을 메웠고 뒷자리에 서서 강의를 듣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은 말고도 있었다. 체구가 작은 남자였다. 키가 160cm 되지 않는 도대리는 말수가 적었고 학생들이 놀려도 웃으며 넘어갔다. 그는 김선생의 친척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그는 어려서부터 김선생의 집에서 함께 자란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그의 얼굴에 가면처럼 들러붙어 있는 주눅 표정의 실체를 이해할 같았다. 도대리는 운전부터 칠판 닦기, 스케줄 관리 모든 것을 도맡아 했다. 심지어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에 김선생의 어깨와 목을 안마해주기도 했다. 수업 중에 졸거나 시끄럽게 하는 학생이 있으면 다가가 주의를 주는 것도 그였다. 덕분에 김선생은 학생들과 감정 상할 일이 없었다. 아이들은 김선생이 아니라 도대리에게 지적을 당했고 그런 그를 뒤에서 욕했다.
 
김선생과 동갑이라고 했지만 도대리가 다섯 살은 먹어 보였으므로 나는 김선생이 그를 동생 대하듯 하는 것이 불편했다. 김선생은 그를 ‘도대리’라고 불렀고 학생들도 덩달아 ‘도대리님’이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때때로 그를 ‘도대리’라고 불렀다. 사실은 ‘자주’ 도대리라고 불렀다. 직급이 대리냐고 묻는 내게 김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저 자식이 어려서부터 대신 이것저것 해줬거든. 대신 혼나주고 대신 심부름도 해주고.
김선생의 말만으로는 그가 도대리와 막역한 사이인지 단지 도대리를 우습게 여기는 것인지 도리가 없었다.
 
그의 성이 ‘도’였기 때문일까. 그의 별명은 자연스럽게 ‘돌대가리’가 되었다. 참고 넘어가던 도대리가 자신에게 심한 장난을 학생에게 박치기를 것이 그런 별명의 원천이기도 했다. 도대리와 박치기를 준호는 눈앞에 별이 반짝였다고 떠들었다. 도대리는 학생들이 자신을 돌대기리라고 놀려도 화를 내지 않았고 역시 웃으며 넘어갔다. 한번은 아이들이 도대리를 돌대가리라고 불렀을 김선생이 불같이 화를 냈으므로 아이들은 김선생 앞에서는 조금 조심하는 눈치였다.
그는 김선생 대신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했다. 학생들은 그와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를 무시하면서도 친근하게 여기는 같았다. 하지만 그는 역시 도대리님보다는 도대리, 아니 돌대가리에 가까웠다.
 
그림 조정화
 
방학이 되자 김선생은 해마다 해온 ‘명문대 탐방’을 하겠다고 했다. 그대로 학생들을 데리고 명문대인 S, Y, K대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휘황찬란한 대학 캠퍼스를 보여주는 것은 학생들의 학습효과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학생들은 원서를 그렇게 확대된 일류대에 대한 동경심이 절망감 역시 확대한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내일은 선생님 모교에 간다. 부모님 동반도 괜찮으니까 시간 되시는 분들은 오시라고 해라.
대학 탐방 전날, 김선생은 나와 도대리에게 말했다.
“우리에겐 학부모가 고객이야. 애들도 애들이지만 학부모 앞에서 말과 행동 조심해.
학원의 고객은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학원에 찾아와 진상을 부리는 것도 학부모였다.
 
학부모들이 정말 올까 생각했지만 그날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은 생각보다 많았다. 대부분 어머니와 함께 왔지만 준호는 아버지와 동행했다. 준호는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이었는데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준호 어머니가 자주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늘어놓았으므로 나는 준호 아버지와 준호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준호는 아버지와 손을 잡고 있었다. 준호 아버지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김선생이 대절한 버스 앞에서 준호 아버지가 말했다.
“사실은 저도 대학을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가려니 기분이 좋네요.
김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준호 합격하면 가시게 겁니다.
김선생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학부모들을 맞았다. 인자한 성직자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믿고 따라주시면 여기에 있는 아이들 모두 일류대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겐 냉정하고 단호한 CEO 모습으로, 학부모에겐 인자한 성직자의 모습으로 능수능란하게 대처했다. 눈에도 그가 때때로 멋져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도대리와 대조되어 더욱 멋져 보였다. 도대리는 아무도 밀지 않았는데도 앞으로 넘어져 무릎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김선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도대리를 흘겨봤다.
 
버스는 김선생의 모교로 향했다. 대학 캠퍼스에 하차한 학생들은 멋스러운 고딕 건물을 올려다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진짜 여기 오고 싶다.
“난 여기에만 원서 거야.
도대리와 나는 샌드위치와 김밥, 음료를 들고 뒤따랐다. 도대리는 나보고 무거우니 들지 말라고 했지만 나보다 키가 작은 도대리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커다란 캠퍼스를 바퀴 둘러보고 같이 잔디밭에 둘러앉았다. 김선생은 자신의 대학생활에 대해 들려주었다.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 캠퍼스 커플만 했다는 이야기, 학과 공부보다는 과외 아르바이트에 몰두하다가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캠퍼스를 거니는 그를 상상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인 자신이 명문대에 들어가게 이야기,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학원선생을 하게 이유, 그리고 이곳 명문대가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이점을 제공해주었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눈에도 눈물이 방울 맺혔을 정도로 그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드디어 힘든 하루 일과가 끝났다. 김선생은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귀가하라고 했다. 학생들이 하나 아버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돌아서는데 나와 도대리 뒤를 따르던 준호가 말했다.
“아빠 아저씨가 도대리야. 돌대가리.
“뭐? 어른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캠퍼스의 녹음 사이로 준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리와 나는 뒤돌아봤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 나중에 공부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그의 손가락은 분명히 도대리를 향하고 있었다. 손가락은 굳이 나를 향하진 않았지만 나는 ‘저렇게’라는 말에 또한 포함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나는 도대리가 미웠다. 멍청하게 행동해서 나까지 저런 말을 듣게 그가. 학생들에게마저 만만하게 행동해서 스스로를 우습게 만들어버린 도대리가.
도대리는 말을 들은 척했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순간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준호의 얼굴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와 도대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아버지보다 앞서 빠르게 걸어가 버린 준호의 뒷모습을.
 
|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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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에서 일할 때 등단하고, 콜센터 이야기로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김의경 작가는 어머니의 사업 부도로 17살부터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어느 누구보다 갑질 고객을 많이 만나본 그녀가 들려주는 ‘내가 만난 갑질 고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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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g0325
  • 저의 생각이 나서 부끄럽네됴. 아들에게 공부 안하면 거지된다고 수도없이 말했던 기억에. 그래서인지 아직 아들이 제자리를 못찾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가슴이 아프네요.
  • 2019/01/1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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