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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나날] 24. 김춘수, 시는 구름처럼 그저 흘러갈 뿐

  • 등록일2018.09.28
  • 조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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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춘수
 
구름은 바보,
내 발바닥의 티눈을
핥아주지 않는다
 
내 겨드랑이에서 듣는 땀방울은
오갈피 나무의 암갈색,
솟았다간 쓰러지는 분수의
물보래야,
너는 그의 살을 탐내지 마라.
대학본관 드높은 지붕 위 구름은 바보.
 
 
이십대 무렵 이 시를 읽고 대학본관 지붕 위를 올려다 봤다. 맑은 하늘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구름이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도 지상에서는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고, 사랑도 미래도 시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젊어서 오히려 슬픈 날들이었다. 구름이 원망스러웠다. 지상은 이다지도 슬픈데 구름은 너무나 태연했다.
 
김춘수의 「시 2」는 내가 개인적으로 손가락에 꼽는 한국의 명시 중 하나다.
80,90년대 무렵 나를 비롯한 시를 쓰는 젊은이들 대부분은 시가 무기가 되기를 원했다. 시가 세상을 갈아 엎어주고, 때로는 밥도 되어주고, 때로는 정의도 되어주길 원했다. 하지만 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가끔씩 우리에게 알 수 없는 세계를, 현실적이지 않은 경지를 잠깐 보여주는 듯 했지만 밥이나 무기가 되어주진 않았다. 물론 시가 주장을 담아주기는 했다. 하지만 주장이 담기는 순간 시는 어느 테두리 안에 갇히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현실적인 구호라는 것이 아무리 옳고 아름답다해도 테두리를 벗어나면 반역이 되기 십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리스 시인에게 정의였던 것이, 국경을 넘어 터키로 가면 악()이 되듯이.
 
이런 사실을 깨달은 순간 시가 미워졌다. 시에 혹하고 시에 흔들리는 내 젊음도 싫었다.
하지만 내가 분노 할 수록 시는 더욱 태연하게 대학본관 드높은 지붕 위를 흘러가고 있었다. 구름은 누가 뭐래도 구름이었다. 빈곤한 자가 바라보는 하늘에도 풍요한 자가 바라보는 하늘에도, 갓 걸음마를 배운 어린아이가 올려다보는 하늘에도, 이제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노인이 올려다보는 하늘에도 구름은 있었다. 같은 모양으로.
 
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구름처럼 유장하게 흘러가는 것, 지상에서 아무리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질러도 유유히 흘러갈 뿐. 대답해 주지 않는 것. 그것이 시였다.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근골(筋骨)과 근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베꼬니아의
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시 또 아침이 오고
바다가 또 한 번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 , , ()의 사과알이
하늘로 깊숙히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또 밤이 와서
잠자는 내 어깨 위
그 해의 새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의 한쪽이 조금 열리고
개동백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리는 그
희디흰 눈발을 보고 있었다.
                     - 「처용단장 – 1 1
 
「처용」 연작으로 대표되는 김춘수의 시는 어떤 주의 주장도 없는무의미의 시.
어떤 규정도 하지 않고 어떤 구호도 내뱉지 않지만 「처용단장」의 위력은 상당하다. 어느 날 나른하게 바라보는 바다의 미학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다니. 누가 바다를 그깟 새앙쥐에 비교해서 미학을 창출할 수 있겠는가. 김춘수니까 가능한 일이다.
얼마나 와 닿는가. 바다가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가. 다른 어떤 말로 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무의미를 통해 미학의 경지를 보여준다는 면에 있어서 김춘수는 한국의 시인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김춘수는 1922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교를 거쳐 니혼대학 예술과에 입학했으나 일본을 비난했다는 불경죄로 일경에 체포된 것이 문제가 되어 1942년 퇴학 처분을 당했다.
해방 후 유치환윤이상심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예술운동을 전개했고, 1948년 첫시집 『구름과 장미』를 간행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김춘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 빠져 기독교와 서양미학이 조화된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시는 「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절창으로 그는 한국의 형이상학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잡았다.
 
김춘수는 자신의 시에서 의도적으로 현실을 지워버린다. 일제와 전쟁 등 격변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이 물신화되는 산업화라는 괴물이 그로 하여금 현실을 지우게 한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는 뻔한 주장이나 묘사를 남발하는 일군의 시들은 결코 따라올 수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팔다리를 뽑힌 게가 한 마리
길게 파인 수렁을 가고 있었다.
길게 파인 수렁의 개나리꽃 그늘을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가고 있었다.
등에 업힌 듯한 그
두 개의 눈이 한없이 무겁게만 보였다.
                                - 「처용 단장- 9
 
김춘수는 생전 어느 문단 계파나 권력에도 깊이 가담하지 않는다. 문학과지성으로 대표되는 문학주의자 그룹에도 끼지 않았고, 창비로 대표되는 리얼리즘 그룹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까. 그의 시는 묘한무국적자의 매력을 풍긴다.
 
하지만 그가 현실과 완전히 담을 쌓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군사정권아래서 전국구 국회의원을 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 이력 때문에 그는 문단이라는 자기장에서 밀려난다. 그를 질시했던 사람들에게 이 이력은 확실한 비판의 구실이 됐고, 그의 문학마저 비판의 도마에서 온전하지 못했다.
타의라고 강변하기는 했지만 나도 그에게 묻고 싶다. 왜 그랬는지, 왜 군사정권과 타협을 했는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구절이팔다리 뽑힌 게 한 마리 / 길게 파인 수렁을 가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김춘수는 일제 말기에 이런 시를 쓴 적이 있었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일본 동경 세다가야서() 감방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 목구멍에서
창자를 비비 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니, 난 살고 싶어요!’
                     -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일본 경찰서 감방에서 살고 싶다고 외치던 문학청년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도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시대적인 부침이 그를팔다리 뽑힌 게로 살게 한 것일까. 그의 유약함이 그를 흔들었던 것 아닐까. 하지만 그는 이제 대답이 없다.
 
오랜만에 빛바랜 그의 시집을 꺼내 읽어본다. 그의 후기시는 역시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의 타협을 인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의 타협은 여전히 졸렬하고 밉다.
김춘수와 그리 가깝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를 비평하면서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시란 무한으로 가는 통로이다.”
 
 | 허연 (시인,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
 
 
 
김춘수 <!HS>시전집<!HE> [인문]  김춘수 시전집
김춘수 | 현대문학
2004.01.15

허연의 시 읽는 나날

허연의 시 읽는 나날
허연은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작가를 꿈꾼 소년, 거장들의 미소에 화답하며 자신만의 공화국을 짓고 있는 시인.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 『불온한 검은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내가 원하는 천사』,『오십 미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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