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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나날] 23. 라이너 마리아 릴케,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며

  • 등록일2018.08.27
  • 조회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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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이노의 비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가 이렇게 울부짖은들 천사의 대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우리가 아름다움을 그토록 찬미함은 파멸하리만큼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매력적인 음가를 지닌 이름을 처음 접하는 아마도 윤동주의 헤는 이라는 시의 구절을 통해서 것이다. 다음 구절이다.
 
어머님, 나는 하나에 아름다운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쟘’ ‘라이너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윤동주는 고향의 소녀들과 강아지와 노루를 떠올리면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을 부른다. 이로 인해 우리는 릴케의 편을 읽기도 전에 릴케라는 이름에 감염된다.
 
한가지 릴케 신화를 거둔 것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소문이다. 오랫동안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으로 각인되어 왔다. 몇몇 릴케 관련 책을 보면 당당하게 1926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공식기록에도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릴케는 백혈병으로 죽었다. 물론 백혈병과 장미 가시는 아무런 의학적 인과관계가 없다. 장미를 좋아했던 릴케의 취향이 이런 소설을 만들어냈으리라...
 
어쨌든 릴케는 신화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릴케는 사춘기적 감수성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깊고 너무 난해하다. 대부분 애호가들이 릴케의 본질을 이애하는 어른이 되어서 아닐까 싶다.
나의 경우는 혜화동 로터리 서점에서 구입한 커다란 판형의 시집두이노의 비가 릴케 자기장을 이해한 사건이었다. 지금은 당연히 절판됐을 것이 분명한 대형판형의 시집에는두이노의 비가」가 두껍고 글씨로 화인(火印)처럼 박혀 있었다.
 
“내가 이렇게 울부짖은들 천사의 대열에서 누가 들어주랴. 우리가 아름다움을 그토록 찬미함은 파멸하리만큼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목은 전율이 정도로 강렬하게 나를 할퀴었다. 릴케 공부는 전율로부터 시작됐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를 만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명의 인물을 함께 만나게 된다. 릴케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 바로 살로메와 로댕이다.
릴케가 살로메를 처음 만난 것은 1897 5 뮌헨에서였다. 소설가 야콥 바서만의 집에서 열린 모임에서 살로메를 처음 릴케는 벼락을 맞은 반해 버린다. 단순한 연애감정이 아니었다. 정신세계까지 장악한 거대한 사건이었다.
릴케는 네살 연상인 살로메에게서 여인과 어머니를 동시에 느꼈다. 특이한 성장환경 때문에 모성상실의 상처를 안고 있던 릴케에게 살로메는 모성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여기에 살로메의 자유분방한 정신세계와 지성은 단박에 릴케를 사로잡았다.
 
살로메는 릴케의 시가 단계 도약하는 역할을 한다. 릴케가 ‘르네’라는 이름을 ‘라이너’로 바꾼 것도, 기울어진 글씨체를 똑바로 쓰게 것도 살로메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한다.
릴케는 살로메에게 이런 유명한 시를 바친다.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있습니다,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있습니다.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 살로메에게 헌정한 기도시집중에서
 
 
 릴케는 조각가 로댕의 비서였다.
1902, 생활고에 시달리던 27세의 릴케는 로댕에 대한 논문 집필 의뢰를 받고 프랑스 파리에서 당시 62세였던 로댕을 처음 만났다. 릴케는 깊고 풍부한 로댕의 예술 세계에 깊게 빠져든다. 여리고 낭만적인 릴케에게 로댕은 반대편에 있는 신적 존재였다.
로댕은 방황하는 릴케에게 “일하라, 일하라”고 되뇌이면서 세속적 쾌락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예술에 천착하고 정진하는 삶을 가르쳤다. 로댕은 릴케에게 개인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사물에 직접 들어가서 보는 듯한 관점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릴케의 시에 영향을 미친다.
 
스치는 창살에 지쳐 그의 눈길은
이젠 아무것도 붙잡을 없다.
눈길엔 마치 수천의 창살만이 있고
뒤엔 아무런 세계도 없는 듯하다.
 
아주 조그만 원을 만들며 빙빙 도는,
사뿐한 힘찬 발걸음의 부드러운 행보는
하나의 커다란 의지가 마비되어 있는
중심을 따라 도는 힘의 무도(舞蹈) 같다.
 
가끔씩 눈동자의 장막이 소리 없이
걷히면 형상 하나 그리로 들어가,
사지의 긴장된 고요를 뚫고 들어가
심장에 이르면 존재하기를 그친다.
           -표범—파리 식물원에서
 
로댕을 만난 경험은 릴케에게 이런 진경을 읽어 있는 혜안을 가져다 주었다.
 
릴케는 1875 당시는 오스트리아 제국이었던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하급관리였던 아버지는 출세욕에 사로잡힌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딸에 대한 집착증을 앓고 있었다. 집착증 때문에 어머니는 릴케를 여자아이처럼 키웠다. 릴케는 일곱 살 때까지 여자 옷을 입어야 했다.
상처는 계속됐다. 아버지는 심약하고 감수성이 발달했던 릴케를 군사학교에 보낸다.
이런 참담한 경험은 릴케에서 상처가 됐다. 릴케는 시를 쓰면서 것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릴케는 살로메에게서는 어머니와 여인을, 로댕에게서는 아버지와 스승을 느낄 있었다. 오늘날의 릴케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봐도 정도다.
 
 
밖에는 가을바람이 불고 있다. 가을이 오지 않을 것처럼 뜨거운 여름은 이제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앙처럼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며 릴케의 구절을 읽는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 가을날
 
| 허연 (시인,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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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시 읽는 나날

허연의 시 읽는 나날
허연은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작가를 꿈꾼 소년, 거장들의 미소에 화답하며 자신만의 공화국을 짓고 있는 시인.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집 『불온한 검은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내가 원하는 천사』,『오십 미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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