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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의 한낮의 독서] 면접괴담, 도시전설

  • 등록일2018.01.11
  • 조회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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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이다.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위한 자리에 면접관으로 참여했다. 한 사람에게 5분 남짓 할당된 시간 동안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면접은 고작해야 소위 부적응자를 걸러내는 방편밖에는 되지 않는다. 보수적으로 말하면 첨부 파일 같은 거.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자료로 의미가 있을 뿐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그런 파일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열심히 물었고 지원자는 열심히 대답했다.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고 답변을 위한 답변을 한다. 마치 연극처럼. 아니다. 그건 정말 연극이었다.
 
“면접이에요?
면접? 글쎄, , 그런 비슷한 거겠지. 대기업은 못 돼도 이 지역에선 자판기 재벌이니까.
면접이에요?
그런 비슷한 거래도.
면접이에요?
, 이 친구 참. 그게 뭐 그리 중요해?
확실히 알고 가야 하빈다. 면접인지 아닌지.
?
면접이라면…… 완전히 다르게 행동해야 하니까요.” (237)
 

주인공은면접-포비아. 과자 회사의 영업직 2차 면접에 통과하기까지 마흔여덟 번의 고배를 마셨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달간의 연수원 합숙 과정. 주인공은 연수원에서 끝난 줄만 알았던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절체가 불분명한 평가 파일에서 비정상적으로 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인데, 왠지 모르게 M은 그 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자기일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극도의 불안감은 M을 함정에 빠뜨린다. 눈에 띄려 하기보다는 성실하게 자기 일을 수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쪽에 가까웠던 M은 연일 곳곳에서 무리수를 던지기 시작한다. 튄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조장의 차지를 빼앗아 오기 위해 여론을 형성하기도 하고 평가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타인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M은 점점 나빠져 간다. 그리고, 그럼에도 평가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 평가는 정말 M에 대한 것일까. 합숙의 정체는 뭘까. 
 
평가하는 자와 평가받는 자. 고용자와 피고용자. 인간은 두 부류다. 적어도 M이 속해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는 그렇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평가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끝은 계속해서 지연되고 평가받는자, 피고용자는 언제나 자신을 평가하는 시선을 의식한 채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사실.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이 평가 시스템 안에서 M은 스스로를 착취한다. 불안에 떨던 M이 단 한 번 만족해하는 장면이 있다. “, 그런데 문득 기분이 좋아진다. 면접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만큼이나 기분이 좋다. 기대했던 탈진으로는 아니지만, 결국 쓰러졌다. 쓰러지는 데 성공한 거다.” (202) M은 진심을 다하지 않은 게 들킬까 봐 진심을 다해서 자신을 소진시킨다. 그리고 기어이 쓰러짐으로써 그 진심이 증명되었음을 진심으로 만족스러워 한다. 
 
애처롭고 눈물겨운 M. 자신이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망상인 듯 현실인 듯 구분되지 않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실시하는 한 달 간의 합숙 기간 동안 M은 왜 이토록 형편없는 인간으로, 대책 없이 불안하고 불행한 인간으로 몰락해 가야만 했을까.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고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으며 공포와 억측만 재생산되는 이곳은 어디일까. 이 불분명함은 마치 도시 전설처럼 풍문과 추측으로 가리워져 있고 M의 고통은 괴담처럼 기괴하고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간다.
 
박지리의 이 소설은 루저 소설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기존의 루저 계열로 볼 수만은 없는 작품이다. 관문을 통과해 이너서클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약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직전의 상승이라는 생각,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고 다시 루저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작은 성공마저 망쳐 버리는 몰락의 서사는 계약과 평가에 저당잡힌 세대의 내면을 보여 준다. 평가만 계속되고 판단은 유보하는 이 피 말리는 지연은 자본주의가 발명한 가장 차가운 약속이다. 
 
박지리의 소설을 읽는 것은 처음이다. 지나치게 자유로운 장르 간 이동은 전통의 결핍이라기보다 새로움의 등장에 가까워 보인다. 내키는 대로 넘나들면서도 내용과 형식이 괴리되지 않고 형식과 형식이 바뀌는 사이에도 독자들의 시선을 이탈시키지 않는 힘. 이것은 소설에 대한 기존의 미학으로 읽히기를 거부하는 텍스드다. ‘연극적이라는 삶의 한 국면을 드러내기 위해 연극의 형식을, 기록되고 평가받는 인생으로 전락한 평면적 인간을 드러내기 위해 일지 형식을 차용한 구조는 무리 없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있다. 간소한 문장에는 곳곳에 깊은 슬픔이 베어 있다. 작가가 살아 있다면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작가에게 먼저 연락했을 것이다. 이런 소설을 써 주어서 고맙다고. 나는 이제 당신의 독자가 되었다고.
 
박혜진 (민음사 문학 편집자)
 
3차 <!HS>면접에서<!HE>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소설]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박지리 | 사계절
2017.12.15

박혜진의 한낮의 독서

박혜진의 한낮의 독서
대낮에 책 읽고 회사에서 월급도 받는, 덕업일치 편집자의 독서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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