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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의 한낮의 독서] 퀴어 워맨스(womance)

  • 등록일2017.09.27
  • 조회 2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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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이미지는 내용과 무관한 자료사진입니다.
 
 
 
올 한해 적잖은 작가가 퀴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 최진영 작가의 『해가 지는 곳으로』는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 상황을 배경으로 두 여성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사랑은 멸망한 세계를 재건할 수 없지만 절망에 빠진 인간만은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한 편의 노래.  사랑의 절대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에 비해 최은영 작가의 「그 여름」은 현실에 바짝 다가선 작품이다. 고교 시절부터 서로를 좋아했던 이경과 수이가 스무 살을 지난다. 한 사람은 대학생이 되고 한 사람은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를 배우며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사이, 서로를 향하던 익숙한 마음에 낯선 거리감이 생긴다. 물이 들고 빠지듯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 섬세하게 포착한 소설. 사랑의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옆에, 조금 다른 자리가 필요한 퀴어 소설이 나왔다. 마찬가지로성소수자의 사랑을 다루지만 두 여성의 사랑보다는 그 사랑을 지켜보는 타인의 시선에 더 많은 것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은 엄마다. 받아들이지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 엄마의 시선은 그것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발하는 이 소설은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다. 출가한 딸을 둔, 그리고 자신은 노인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중년 여성이 딸과 자신의 담당 환자를 돌보며 경험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김혜진의 재발견이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는 딸의 연인은 여성이다. “내 딸은 하필이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한번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날 다그치고 닦달하는 걸까요.” 엄마는 딸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외면하고 체념하는 것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엄마와 딸, 그리고 딸의 연인은 불가피한 이유로 한 집에서 살게 된다. 외면하고 싶은 딸의 사생활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엄마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 같다. 엄마는 생각한다. 계속해서 생각한다. 딸에 대해, 딸의 연인에 대해, 딸의 인생에 대해, 딸을 바로잡지 못한 자신에 대해, 딸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엄마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더 있다. 치매 환자 젠에 대한 것이다. 젊은 시절 외국에서 살며 한국계 입양아들을 위해 헌신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일했지만 현재는 누구도 그녀를 돌보지 않는 상황. 많은 돈을 내고 들어온 요양병원마저 그녀가 치매에 걸려 의식을 잃어가자 값싼 병원으로 보내 이익을 남기려고 한다. 그럴수록 젠에게 마음이 쓰이는 엄마는 점점 더 젠의 보호자가 되어 간다. 이상한 일이다. 침대에 누워 죽음이 자신을 덮쳐 오기만을 기다리는 비참한 시간에서 엄마는 자꾸 자신을 본다. 그리고 딸과 딸의 연인도 본다. 생각하던 엄마, 거부하고 부정하던 엄마는 젠의 불행 앞에서 행동하기 시작한다. 사람을 말려 죽이는 병원의 규칙 따위 무시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옳은 것이 옳다는 듯 행동한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을 위해 시위하고 맞고 다쳐서 들어오는 딸을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가 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이 소설에는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젊은 성소수자 여성, 일하는 중년의 여성, 늙고 병든 여성. 이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살아왔다. 젊은 둘은 혐오의 언어, 배제의 논리와 싸우며 투쟁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있다. 중년 여성은 생존하기 위해 쉬지 않고 굴러가는 노동의 수레바퀴 아래 깔린 인생을, 노인은 가진 모든 걸 베풀었던 세상에서 배신만을 돌려받은 허무한 인생을. 네 여성의 고단하고 위축된 삶이 긴 인생의 아주 잠깐 동안, 엄마의 집으로 모여든다. 엄마의 집은 불편한 관찰의 공간에서 편안한 응시의 공간이 되어 간다. 싸움과 체념과 오기와 비참으로 마모되어 가던 이들의 삶에 아늑한 공기가 휩싸이며 엄마의 집은 이들을 누구 하나 소외시키지 않는 온기 있는 공간, 상징적인 장소가 되어 간다. 딸도 그대로이고 젠도 그대로인데 이 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엄마가 젠에게서 본 건 죽음이 아니라 외롭고 쓸쓸한 미래였을 것이다. 거기서 홀로 외로운 자신의 처지도 봤을 것이다. 딸의 미래에 자신이 있지 않기를, 젠이 있지 않기를. 젠의 그 고독한 풍경이 엄마의 마음속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떨쳐 내게 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돈 앞에서 쩔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지는 게 두려워요. 그건 내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 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네 여성이 함께하던 그 이층집의 따뜻한 공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유례없는 워맨스(womance)는 우리 머릿속에 단순 명료한 진실만 남길 것이다. 엄마가 변한 것처럼 나도 어딘가 변했다. 이 소설을 읽는 많은 사람이 그것을 경험할 것이다.
 
┃박혜진 (민음사 문학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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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책 읽고 회사에서 월급도 받는, 덕업일치 편집자의 독서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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