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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의 너에게 닿기를] 100% 확률의 기적

  • 등록일2017.09.13
  • 조회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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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이미지는 내용과 무관한 자료사진입니다.
 
 돈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따뜻하게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이들일수록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강조하는 역설적인 세태를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화폐와 상품의 교환 관계가 작동하는 세상에서 돈이 하찮을 리 없다. 차라리 돈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사람이 미덥다.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지 말고 추상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조언―‘열정 페이같은 말도 안 되는 말이 대표적이다―은 구체적인 모순을 은폐하는 데 자주 이용되는 알리바이기도 하다.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있다. 30여 년 전 서울에서 인질극을 벌인 지강헌이 절규한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이제껏 살며 보고 듣고 느낀바,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유효한 명제인 듯하다. 그렇다면 무전(無錢)을 넘어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는 오늘날 한국인들은 대죄를 지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의 삶이신용불량파산아르바이트등 궁핍과 생존의 어휘들로만 가득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법은 빚을 진 사람이 아니라 빚을 지우는 자본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한다. 그래서한방에 인생 역전을 노리는 사람들로 로또 판매점은 항상 붐빈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 5060분의 1’이라고 한다. 벼락 맞아 사망할 확률보다 두 배 더 높은 수치다. 로또의 꺼지지 않는 열기는 1등 당첨금 수십억 원이 아니고서는, 인생을 바꿀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모두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지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럴 만한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아,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꿈꾼다. 한데 나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기적이 로또 1등 당첨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기적은 행복의 가면을 쓴 불행일지도 모른다. 로또 1등에 당첨된 다음,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가 파탄 났다는 여러 뉴스가 그것을 예증한다. 그렇다면 진짜 기적은 무엇일까. 두 편의 소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변화시킬 기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814 5060분의 1의 확률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기적이 아니라, 100%의 확률로 얻을 수 있는 확실한 기적.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짜 기적이 아닐까. 
 
기적의 사례 1 : 히가시노 게이고, 양윤옥 옮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 2012)  
  
  몇 시간 전 범죄를 저지른, 세 명의 좀도둑아쓰야쇼타고헤이가 경찰의 눈을 피해 어느 폐가에 몸을 숨긴다. 그곳은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낡은 잡화점이다. 한밤중에 몰래 들어온 어수룩한 삼인조는 거기에서 이상한 일을 겪는다. 잡화점 주인 앞으로, 갑자기 어디에선가 편지가 한 통 도착한 것이다. 호기심에 그들은 편지를 읽는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잡화점 주인에게 아주 진지한 고민을 털어 넣고 조언을 구하고 있다. 알고 보니 편지는 수십 년 전에 작성됐다. 잡화점에서는 시간을 초월해 편지가 배달되는 기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던 것이다.
 
  죄는 범했으나 마음씨 착한 세 사람은, 지금 여기에 없는 잡화점 주인 대신 고민 상담을 해주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자기 문제인양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답장을 쓴다. 몇 십 년 전을 살고 있는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기한테 아무 이득도 없는 고민 상담에 열성적으로 임하는 것이다. 고헤이는 말한다. “몇 마디만 써 보내도 그쪽은 느낌이 크게 다를 거야. 내 얘기를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웠던 일, 자주 있었잖아? 이 사람도 자기 얘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거야. 별로 대단한 충고는 못해주더라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달라, 그런 대답만 해줘도 틀림없이 조금쯤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고.” 그 후 고헤이는 다시 이렇게 고백한다.
 
  뭔가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늘 밤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을 했다는 실감이 들었어. 나 같은 게. 나 같은 바보가. (……) 돈이 문제가 아니야. 돈 버는 일이 아니니까 오히려 더 좋은 거야. 이익이니 손해니 그런 건 다 빼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진지하게 뭔가를 고민해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어.”
 
기적의 사례 2 : 정세랑, 재인, 재욱, 재훈(은행나무, 2014)    
 
  형광기가 도는 바지락칼국수를 먹고 초능력이 생긴 삼남매가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재인재욱재훈이다. 그들에게는 불만이 하나씩 있다. 연구원인 첫째 재인은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약품 탓에 손톱 상태가 늘 엉망이다. 회사원인 둘째 재욱은 몇 년 전 사고를 당해, 주변 상황에 대응하고 분위기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는누군가 중요한 말, 중요한 일에만 다른 색깔로 표시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인 셋째 재훈은 오래된 아파트의 느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느라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다.
 
  이들의 고민은 형광 바지락칼국수 덕분에 초월적으로 해결된다. 재인은 강철보다 강한 손톱을, 재욱은 위험을 감지하는 눈을, 재훈은 엘리베이터를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어벤저스처럼 화려하고 거창한 초능력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연히 얻은 능력을 본인의 자리에서 제대로 활용하면서 사람을 구한다. 요란하지 않고 은밀하게. 그 뒤 삼남매는 같이 슈퍼 히어로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영화가 재미없는 건 맞는데,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아직도 세계의 극히 일부인 것 같아. 히어로까지는 아니라도 구조자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재욱이 말했을 때 재인과 재훈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각자 자기가 구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게다가 어쩌면 구해지는 쪽은 구조자 쪽인지도 몰라.”
 
*
 
  문학평론가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삶의 기적을 문학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너무 바빠서 뭘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살기도 벅찬데, 굳이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와 같은 물음에 답하는 일은 여전히 곤혹스럽다. 모범 답안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대학 1학년 때 수강했던 문학 개론 수업에서부터, 문학의 역할과 의의는 반복적으로 보고 들어서 이제는 외울 정도다. 그래도 배운 그대로 답변할 수는 없었다. 교과서에 적힌 내용만으로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주지 못한다.
 
  고민이 깊었으나 결론은 단순하게 내렸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스스로 체감한 점을 솔직하게 밝히자는 것, 현재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지어 절실하게 느낀 점을 가감 없이 전하자는 것이다. 서툴더라도 그렇게 하는 편이 그 시간, 그 장소에서의 진실한 응답이 되리라고 여겼다. 따라서 동일한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항상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요새는 이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하여 말한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느끼지 않고 동정도 하지 않으며, 부러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한편 그런 태도는 잘난 체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나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면나 자신은 물론누군가에 대해서도 책임과 동정,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내가 밀어낸 누군가에 대한 책임, 그곳에 있지 못한 자신에 대한 동정, 그리고 이곳보다 멋진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에 대한 부러움.
(후루이치 노리토시, 이언숙 옮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민음사, 2014, 319~320)
 
  문학은 나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여, 누군가에 대한 상상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추동한다. 저곳에 있는 모르는 사람이 이곳에 있는 나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는 인식, ‘의 행복과 불행이 별개로 떨어져 있지 않고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마음을 자극하는 것이다. 내밀한 서정과 서사로, 광대한 소통과 공감을 지향하는 문학은사람이라는 단수사람들이라는 복수를 매개한다. 개인의 독립적 생존은, 모두가 함께 사는 삶이 전제되는 한에서 성립한다. 홀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칠 때 사람은 괴물로 변한다. 굳이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나는 답하고 싶다.
 
  탈출구가 막힌 절망의 나라에서,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격려가 오히려 실재를 기만하는 술책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현상을 적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렇다고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할 수만도 없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서 불만과 분노를 차곡차곡 갈무리한 모든 사람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해서 막힌 탈출구를 어떻게든 열어젖히거나,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해 죽을힘을 다해 뚫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안 그러면 평생 한숨만 내쉬다 허망하게 죽고 말겠지. 이제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열망과 투지를 불태울 때가 아닌가 싶다. 괴물이나 기계가 되지 않으려고, 온전한 사람으로 살려고,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는다. 이것이 내가 염두에 둔, 빈곤한 현실을 문학적 현실로 재구성하는 100% 확률의 기적이다.
 
┃허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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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의 '너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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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설레며 읽었던 소설 속 인물에 건네는 말―가닿고자 했으나, 거의 닿지 못했던 실패의 과정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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