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영역

현재 칼럼 모아보기 전체목록보기

[북스 인 더 시티] 그는 그 때 그랬을 것이고, 나는 지금 (이탈리아/트리에스테)

  • 등록일2017.09.13
  • 조회 444
트위터 페이스북
 

1. 그란데 광장 [PIAZZA GRANDE]
1904 10 20, 트리에스테(Trieste)를 대표하는 이 광장에서 그는 만취한 영국 뱃사람에게 아이리시(Irish) 억양으로 심한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bar)에서 소동을 부리고, 경찰에게 잡혀갔을 것이다. 영국 영사의 도움으로 몇 시간 만에 풀려나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자신의 연인 노라(Nora)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안도와 행복을 느꼈겠지.
나는 지금, 100여 년 전 그가 취해 걸었을 그 광장을 등에 지고 바다를 본다.
 

2.
산 니콜로 거리 30 [VIA S. NICOLÒ 30]
이 거리의 건물 2층에서 그는 단편소설을 썼을 것이다. 늘 그리워하던 곳들, 것들, 고향 사람들에 대해 썼을 것이다. 안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고, 밖에 나와야 비로소 안이 잘 보인다는 진리를 깨달으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이 태어났을 때, 고향을 더욱 그리워했겠지.
나는 지금, 아무런 생각 없이 그 거리에 서서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내 고향의 그리운 것들을 떠올린다. 아니, 그것들이 절로 떠오른다.   
 
3. 산 니콜로 거리 32 [VIA S. NICOLÒ 30]
지금은 세계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매장이 자리 잡고 있는 그 곳에, 영어 학원이 있던 시절, 그러니까 지난 세기 초, 그는 거기서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을 것이다. 이탈리아 학생들은 멀리서 온 원어민 선생님의 말에 귀를 쫑긋했겠지.
나는 지금, 그 앞에 서서 그의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를 상상한다. 이탈리아어도 중후했겠지.
 
4. 산트안토니오 누오보 광장 [PIAZZA SANT'ANTONIO NUOVO 6]
영어 학원 강사들의 단골 카페였던 스텔라 폴라레(STELLA POLARE CAFÉ)에서 그는 구석 자리에 앉아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자신의 작품에 등장할 인물들을 상상했을 것이다. 친하게 지냈던 이탈리아 문인 친구들과 이탈리아어로 수다를 떨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카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절로 웃음이 난다. 아이스크림이 맛있서서  그런지, 그가 앉아 있던 곳에 내가 앉을 수 있어서 그런지 잘 알지도 못한 채 그냥 웃는다.
 
5. 라르고 바리에라 베키아 12 [LARGO BARRIERA VECCHIA 12]
그는 이 거리의 빵집 피로나(Pirona)에서 매일 아침 식사를 했을 것이다. 포도주와 빵을 곁들여 먹으며 하루를 설계 했을 것이다. 가끔은 가족들을 위해 빵을 샀을 것이다. 아직까지 같은 이름으로 빵집이 운영되고 있을 정도니 분명히 빵맛은 좋았을 텐데. 그는 퇴근 후에 빵집에서 따끈한 페스츄리를 사서 품에 안고 행복하게 웃으며 집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웃으며 그를 혹은 그 빵을 반겼을 것이다.
나는 지금, 선뜻 들어가고 싶지 않은, 그 오래된 빵집의 외관에 살짝 실망한 채로 그 앞에 그저 서있다. 나지도 않는 빵 냄새를 상상하며. 눈까지 감고 말이다.
 

6.
로마 거리 16 [VIA ROMA 16]
1904년 그가 그 다리를 건널 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 뒤, 그 곳에 자신의 동상이 생기게 된다는 사실을.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와 동상과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나는 지금, 그와 동상과 사진을 찍으며 상상한다. 조국이 아닌 곳에 나의 동상이 세워진다면 어떤 기분일지를. 물론, 아무래 애를 써도 감조차 잡히지 않지만.
 

7.
마돈나 델 마레 거리 13 [Via Madonna del Mare, 13]
당연히, 그는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생길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 박물관에 동양의 무명작가 한 명이 와서 자신을 닮은 조형물 앞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분명히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있는 제임스 조임스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행복한 마음으로.
 
나는 지금,
율리시스』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아내 노라와 함께 이주해 영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들을 낳고, 문인 친구들을 만나고, 자신의 대표작들을 탈고하거나 시작했던 바로 이탈리아의 작은 해변 도시 트리에스테에 와 있다. 이곳에서 그의 이름을 딴 호텔에 누어 그가 트리에스테에서 완성한 고향 이야기더블린 사람들』을 다시 읽고 있다. 그가 살았던 그 시절 트리에스테를 마음껏 상상하며.
 
(, 제임스 조이스에 관한 상상은 그저 상상이 아닌, 트리에스테 조이스 박물관이 제공한 자료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뮤직 인 더 시티: 제임스 조이스가 작사작곡한 <Bid Adieu To Girlish Days>
 
┃강병융 (소설가, 류블랴나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
 

강병융의 북스 인 더 시티

강병융의 북스 인 더 시티
소설가 강병융이 찾은 유럽 그리고 그 속에서 떠올린 책
  • 퍼가기 인쇄 트위터 페이스북

칼럼 모아보기

최신기사 보기

전체목록보기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댓글등록

현재 0 / 4000 bytes (최대 한글 2000자, 영문 4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