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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클래식] 3. 헨델 Handel

  • 등록일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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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은 바흐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바흐가 대대로 음악가 집안 출신인 데 비해 헨델은 음악가와는 거리가 먼 의사 겸 이발사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헨델은 아버지의 여행길에 따라나섰다가 우연히 오르간을 칠 기회를 얻어 즉흥적으로 오르간을 친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연주를 듣고 감탄한 그 지방의 영주와 음악단의 악장이, 재능이 뛰어난 아들에게 음악 공부를 시키라고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한다. 분위기에 밀려 마지못해 아들에게 음악 공부를 허락한 아버지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음악 이외에 법률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헨델은 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하게 되었지만 끝내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법률 공부를 그만두고 고향을 떠나 함부르크로 갔다.
 
그곳에서 헨델은 처음으로 작곡한 오페라 <알미라>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바로크 음악의 본고장이자 오페라의 발상지였던 이탈리아로 갔다. 이때부터 천재성이 빛을 발하면서, 그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독일 하노버 궁정악장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도전의 길에 몸을 던진다. 그래서 택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당시의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경제적 풍요를 구가했지만 그렇다고 내놓을 만한 음악가가 없었다. 존 다울랜드와 헨리 퍼셀밖에 모르던 영국인들을 위해 헨델은 빼어난 음악성으로 그들이 갈구하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화려한 무대에 올리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것 같았던 헨델은 말년에 중풍과 백내장, 투자 실패에 따른 빚으로 고통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오르간 연주를 멈추지 않았고, 온화한 기분을 갖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는 음악 작곡도 계속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그는 사후 유산을 빈민구제소에 기부했고,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에 안장되었다.
 

조지 1세의 템스 강 뱃놀이에서 수상음악을 소개하는 헨델,
19세기경, 에두아르 장 콘라드 함만
 
 
♩나의 추천곡
수상음악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
오라트리오 <메시아>
 
 
내가 <!HS>사랑한<!HE> 클래식 [예술/대중문화]  내가 사랑한 클래식
홍사중 | 이다미디어
2017.08.30
 

홍사중의 '내가 사랑한 클래식'

홍사중의 '내가 사랑한 클래식'
어린 시절부터 축음기로 클래식 음악의 소품을 듣다가 클래식 음악 매니아가 된 지은이가 일반인을 위해 쉽게 쓴 음악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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